미국, 한·일 갈등 확전 자제 요청할듯…일본 언론 “트럼프 진심 몰라”

입력 2019-07-21 16:43 수정 2019-07-21 17:13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불거진 한·일 갈등과 관련해 미국이 기존의 당사자 해결 원칙에서 탈피해 물밑 중재로 방향을 선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일 갈등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연데 이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한·일 방문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은 한국 정부가 안보 문제를 가지고 미국을 움직이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진심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하는 백악관 행사에서 “사실 문재인 대통령이 내가 관여할 수 있을지 물었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모두 좋아한다.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면 나는 거기 있을 것”이라면서도 “바라건대 그들이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이 원한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중재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날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재진 질문에 답한 것이지만 한·일 갈등에 대해 처음 공개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무엇보다 한·일 갈등이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의지로 읽힌다. 자칫 미국 기업도 피해를 입고, 한·미·일 북핵 공조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볼턴 보좌관의 한·일 방문은 트럼프 행정부가 물밑중재에 나섰음을 보여주는 시그널이다. 다만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20일 “한·일 갈등 국면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없는 입장을 감안할 때 볼턴 보좌관은 한국과 일본에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기보다는 양국에 확전 자제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반응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일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진심을 알기 어렵다”고 폄하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21일자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내가 얼마나 많은 일에 관여해야 하나. 북한 문제에도 관여해 당신을 돕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요미우리는 문 대통령이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재를 요청한 배경으로 한·미·일 3국 간의 안보 협력을 중시하는 미국을 끌어들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내달 하순 만료되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포괄적인 수출 규제를 완화해 주는 ‘화이트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려는 일본 정부에 대한 압박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정부는 1년 단위로 갱신하는 이 협정을 연장하려면 내달 24일까지 결정해 일본 측에 통고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책을 모색 중인 청와대는 이 협정 연장 여부에 대해 “모든 옵션을 검토한다”며 유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요미우리는 “(한국 정부는) 북한을 둘러싼 한·미·일 연대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위기감을 미국에 안겨 일본 정부에 압박을 가하도록 하려는 목적이 있는 듯하다”며 “그러나 협정을 파기할 경우 미국의 반발로 한국 측 생각대로 흘러갈지는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징용공 문제의 중재는 쉬운 일이 아니어서 미국의 조기 개입에 회의적인 견해도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사히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미국이 한·미·일 정부 고관 협의 개최를 모색하고 있다고 21일 전했다. 아사히는 복수의 미국 정부관계자에 대한 취재를 토대로 “최근 새로 취임한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아·태지역 담당 차관보가 포함된 3개국 고관 협의 개최가 모색되고 있다”며 “미국은 이달 말부터 내달초까지 방콕에서 열리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관련 회의나 9월 유엔총회등을 (고관협의 개최의 장으로)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