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잘 다녀오라, 이런 ‘현수막정치’ 계속 참아야하나”(영상)

입력 2019-07-21 05:00 수정 2019-07-21 05:00

‘현수막 공해’라는 말이 있다. 동네 주요 지점마다 현수막이 난립해 경관을 어지럽혀온 게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적인 도시치고 현수막들이 이렇게 방치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서울 서대문구는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어디를 가도 불법 현수막을 찾아보기 어렵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사진)이 지난 몇 년간 강력하게 단속한 결과다.

불법 현수막과 전쟁을 벌여온 문 구청장을 지난 17일 만났다. 문 구청장은 “정당 현수막이 현수막 문제의 핵심”이라며 “자치단체장들이 정치권 눈치를 보느라 정당 현수막을 봐주고 있어서 불법 현수막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 구청장은 “지금은 불법 현수막이 거의 없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 조금만 방심하면 도로 현수막 천지가 된다”면서 “불법 현수막은 시장, 군수, 구청장들이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단속해서 근절시켜야 한다. 그래서 ‘불법 현수막은 안 된다’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대문구는 주말이나 밤, 명절, 연휴 등에도 현수막을 단속한다. 공무원들이 근무 안 하는 시간을 노려 현수막을 붙이기 때문이다. 문 구청장도 본인 차량에 커터칼을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동네를 다니다가 불법 현수막에 눈에 띄면 차에서 내려 직접 잘라버린다.

문 구청장은 “지정 게시된 현수막을 제외하면 전부 불법”이라며 “거리에 붙어있는 현수막은 다 불법이라고 보면 된다”고 얘기했다.

“외국에 가보면 거리에 현수막이 거의 없다. 미국이나 유럽의 어느 도시에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현수막이 많이 걸려 있나? 어떻게 광고 목적으로 도시의 공공재를 마음대로, 불법으로 차지하도록 내버려두나? 이런 행위는 시민의식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불법과 탈법이 용인되는 사회가 돼선 안 된다.”

불법 현수막의 90% 이상은 상업용이다. 특히 아파트 분양광고가 많다. 현수막 광고는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된다. 불법이지만 봐주는 분위기도 있으니 굳이 안 할 이유가 없다.

나머지 10% 정도는 정당용 현수막, 행정용 현수막이다. 서대문구가 올해 단속한 불법 현수막 3966건을 분류해보면 상업용이 3643건이고, 정당용 202건, 행정용 121건이다.

문 구청장은 “정당 현수막이 불법 현수막 문제의 핵심”이라며 “정당 현수막을 단속하기가 쉽지 않아서 현수막 문제가 근절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속권을 가진 자치단체장 입장에서 현수막을 거는 정당이나 지역구 국회의원, 지구당위원장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그들이 공천권을 쥐고 있으니까 그렇다. 단속을 하면 직접, 간접으로 압박이 들어온다. 그래서 정당 현수막을 내버려두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왜 우리 현수막만 단속하냐고 항의한다. 정당 현수막을 단속 못하니까 상업용도 못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수막으로 거리가 도배된다.”

3선의 문 구청장은 재선 이후 정당 현수막 철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먼저 각 정당에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정당 현수막을 걸 수 있도록 지정 게시대 10면을 새로 마련했다. 그래도 막상 단속이 시작되자 항의가 빗발쳤다. 구청 앞에 와서 현수막 철거에 대해 항의시위를 하는 정당도 있었다.

그는 “현수막을 거는 게 정당법상 허용돼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법제처의 해석에 따르면 정당 현수막을 걸 수 있는 경우는 행사와 집회에 한정돼 있다”며 “행사나 집회 장소에는 현수막을 걸 수 있다. 그러나 거리에 거는 홍보성 현수막은 안 된다. 불법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 현수막 정치는 끝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정당 현수막이란 게 대부분 정치인 이름 알리기다. 명절마다 거리에 일제히 걸리는 ‘고향 잘 다녀오십시오’ ‘명절 잘 보내세요’ 같은 현수막을 보자. 목적이 뭐겠나? 자기 이름 알리는 것 말고 뭐가 있나? 사실상 다음 선거를 대비한 홍보 현수막이다. 국회의원이라고 이런 걸 봐줘야 하나?”

모든 구청장들이 다같이 현수막 단속에 나선다면 정치적 외압도 이겨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해묵은 현수막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어느 구청장 혼자 정당 현수막을 단속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구청장들이 다 같이 하면 괜찮다. 그래서 다른 구청장들에게 눈치 보지 말고 다 같이 하자, 그러면 불법 현수막은 더이상 안 된다는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제안을 하고 있다.”

그는 정치인들을 향해서도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법을 안 지키면 안 된다. 정치가 모범을 보여야 된다”며 “양쪽 다 같이 안 걸면 된다. 이제 현수막 정치 그만 하자”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영상=최민석 기자, 김다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