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종종 영화의 주제가 돼왔다. ‘아이 캔 스피크’ ‘허스토리’ ‘귀향’ 등이 비교적 근래 제작된 위안부 영화들이다. 25일 또 하나의 위안부 영화 ‘주전장’이 개봉한다. 35세의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Miki Dezaki) 감독이 들고온 이 영화는 그동안의 위안부 영화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며 위안부 영화의 새로운 단계를 보여준다.
‘주전장’은 기존의 익숙한 극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영화다. 피해자들의 이야기 대신 위안부 문제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빽빽하게 교차시키며 2시간 가량을 이어간다.
‘주전장’이 위안부의 ‘역사’가 아니라 위안부의 ‘현재’를 다룬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과거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가 아니라 지금 어떤 이야기(주장)가 오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영화 ‘주전장’의 위안부는 위안부라는 ‘존재’가 아니라 위안부라는 ‘이슈’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제목(Shusenjo: The Main Battleground of the Comfort Women Issue)은 그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위안부 이슈에 대한 주요 쟁점들’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영화는 ‘노예’ ‘강제징집’ ‘사죄’ ‘책임’ 등 위안부 이슈를 둘러싼 쟁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감독은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의 태도가 인종차별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일본이 그럴 리가 없다’ ‘한국인은 거짓말을 잘 한다’ ‘중국이 뒤에서 계락을 꾸미고 있다’ 같은 생각들이 그것이다. 감독은 일본 우익의 신념과 사상의 핵심에 인종차별주의가 자리하고 있다고 보고 그것이 위안부 이슈에 투영돼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감독은 일본의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만들었다가 일본 우익들로부터 극심한 공격을 받았고 그때의 경험으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를 전쟁범죄나 인권사건 외에 인종차별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는 감독의 시각은 시각은 상당히 흥미롭다.
국내의 위안부 인식에 도전하는 책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해 소송까지 당한 박유하 세종대 교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감독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전혀 변화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이 영화에 인터뷰이로 출연했다.
이 영화가 국내에 ‘인식의 충격’을 줄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내의 인식과 논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줄 가능성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위안부 이슈가 역사전쟁 정도가 아니라 현재 전개되는 한일갈등과 이념전쟁의 최전선이라는 것, 지금 부딪히고 있는 것은 감정 정도가 아니라 사상·신념·논리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1965년 한일협정이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미국이 개입돼 있으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상 필요에 따라 두 나라의 과거사 문제가 부실하게 봉합되었을 가능성을 슬쩍 거론한다. 앞으로 좀더 깊게 봐야 할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위험하고 어려운 얘기에 도전한 감독의 용기는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이다. 그는 “일본에서 위안부 이슈는 굉장히 말하고 싶지만 터부시된 이야기”라며 “말하고 싶은 걸 말할 수 있다는 것, 권력자를 비판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체 관람가.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