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이 의붓아들 사망 5개월여 만에 현남편과 처음으로 대질한다. 충북 청주상당경찰서는 제주교도소로 수사관을 파견해 19일 오후 1시부터 고유정과 현남편 A씨를 함께 불러 조사한다.
경찰은 이달 들어 고유정과 5번 만났다. 이전까지는 A씨에 대한 집중조사만 이뤄졌다. 경찰은 두 사람이 대면한 상태에서 하는 진술을 토대로 의붓아들이 숨진 경위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부실수사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청주 경찰이 이번 대질을 통해 유의미한 진술을 얻어낼지 관심이 모이는 가운데, 고유정 의붓아들 사망사건에서 경찰이 지금까지 놓친 것과 대질을 통해 답을 찾아야 할 그간의 의문점들에 대해 살펴봤다.
고유정의 의붓아들(6)은 아이가 재혼한 친아빠와 함께 살기 위해 청주로 온 지 3일째 되던 지난 3월 2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압착에 의한 질식사였다.
◇사망 무렵 잇따랐던 수상한 정황들… 경찰이 알아내야 할 것
①“우리 이제 아이들과 함께 살자” 수상한 제안
A씨는 “고유정은 내 아들을 장애물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함께 살자고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18일 부부싸움 끝에 집을 나간 고유정은 A씨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의붓아들 얼굴을 올려놓자 “보란듯이 내 새끼는 이애다 그리도 티 낼 필요 없어. 왜 자꾸 저 애기 사진만 올리지? 얼마나 내가, 우리가 너에게 쪽팔린 존재였으면. (나와 내 아들을) 능멸한거야. 진짜 누굴 보라는 거지?”라는 식의 분노에 가득찬 문자를 보냈다. 가출한 지 거의 한 달 만인 11월 14일 집으로 돌아온 고유정은 “아이들(고유정의 아들과 A씨의 아들)을 모두 청주로 데려와 네 식구가 함께 살자”고 말했다. 재혼 후 A씨는 “아이들과 함께 살자”고 부탁했지만 고유정은 줄곧 거절했었다. 당시 A씨는 이를 화해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고유정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을까.
②갑자기 미뤄진 고유정 아들의 청주행
당초 계획은 A씨의 아들과 고유정의 아들이 함께 청주에 오는 것이었다. 계획은 곧 바뀌었다. 고유정이 A씨의 아들을 먼저 청주로 데리고 오고, 자신의 아들은 조금 늦게 데리고 오자고 말을 바꿨다. A씨는 “고유정이 제주도 외가에 살고 있는 자신의 아들이 올라올 날짜를 갑자기 미뤘다”고 주장했다. A씨의 아들은 고유정 아들보다 앞서 지난 2월 28일 청주에 도착했다. 아들은 다음날인 3월 1일 저녁 메뉴로 새엄마가 만들어준 카레라이스를 먹고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 아이는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고유정이 아들의 청주 도착 일정을 바꾼 것은 의도적인 것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사정으로 인한 우연이었을까. 경찰은 이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
③전남편 마지막 식사는 ‘졸피뎀 카레’… 의붓아들도 카레 먹었다
아이가 사망 전날 먹은 카레라이스도 미심쩍다. A씨에 따르면, 아들이 사망하기 전날인 3월 1일 고유정은 A씨에게 차를 한 잔 건넸다. A씨는 이 음료를 마신 뒤 평소보다 더 깊게 잠들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저녁식사로 A씨와 아들은 고유정이 만든 카레라이스를 함께 먹었다. 고유정이 전 남편을 살해하기 위해 카레에 수면제의 일종인 졸피뎀을 넣었다는 검찰 발표가 나온 뒤 의심은 더 깊어졌다. A씨는 “고유정이 카레에 약물을 섞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연 치고는 너무 이상하다”고 했다. 다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숨진 아이를 부검한 결과 ‘압착에 의한 질식사’로 결론 내린 뒤 “외상이나 장기 손상은 없었고 약물이나 독극물도 검출되지 않았다”는 소견을 밝혔다.
④고유정이 지난해 11월 처방 받은 졸피뎀의 행방
고유정은 전남편을 살해할 때 졸피뎀을 먹여 제압했다. 이 때 사용한 졸피뎀은 지난 5월 17일 청주에서 처방받은 것이다. 일주일 동안 먹을 수 있는 양(7알)이었다. 통상적으로 졸피뎀 7알을 처음부터 처방받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전문가는 “보통 처음에는 3~4알 정도를 먼저 처방한 후 약효가 들지 않을 경우 일주일 분을 처방한다”고 했다. 고유정이 7알을 처방받기 위해 약국을 여러 차례 찾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경찰 조사 결과 고유정은 지난해 11월에도 청주의 한 병원에서 졸피뎀을 처방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고유정이 부부싸움 후 가출했다가 청주 집으로 돌아올 무렵이다. A씨는 이 때 처방 받은 졸피뎀을 지난 3월 1일 사용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⑤아이가 흘린 피는 소량이 아니었다
앞서 경찰 관계자는 고유정 의붓아들 사망과 관련해 “시신 입 주변에 소량의 피가 흘러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일보가 입수한 현장 사진을 보면, 다량의 혈흔이 이불에 남아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아이 얼굴 크기 정도의 면적이다. A씨는 피가 이불과 매트리스까지 스며들 정도로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현장 목격자인 고유정은 당시 상황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두 사람의 진술은 일치할까, 엇갈릴까. 이 대목도 주목해봐야 한다.
⑥고유정은 의붓아들 장례식에 왜 오지 않았나
경찰은 이불과 매트리스를 그대로 둔 채 돌아갔고, 고유정은 이후 이런 물품들을 모두 폐기했다. 아이의 장례과정에 참석하지 않고 집 안을 청소한 것이다. 고유정은 의붓아들의 장례 과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A씨와 그의 지인들은 입을 모았다. 장례 마지막 쯤 납골당에 잠시 얼굴을 비춘 게 전부였다. 당시 A씨의 지인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친아들이 아니라지만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A씨가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은 이미 깨끗하게 치워진 상태였다. 아이의 피가 묻어있던 이불 등은 모두 사라졌다.
⑦아이는 무엇에 의해 ‘압착’ 됐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결과 A씨 아들의 사인을 ‘압착에 의한 질식사’라고 결론 내렸다. 따라서 경찰은 압착이 무엇에 의해 발생했는지 밝혀내야한다. 이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다. 그동안 복수의 언론은 “A씨가 ‘눈을 떴을 때 내 다리가 아들 위에 올라가 있었다’고 진술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이에 대해 A씨는 “경찰이 ‘당신의 다리가 아이의 몸 위에 올라갔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묻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답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아이의 등에는 일자로 눌린 자국이 발견됐다. 이에 대해 A씨는 성인인 A씨의 다리가 자신의 아래쪽에서 잠들어있던 아이의 등 위에 올라갔다면 눌린 자국은 일자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를 향하는 사선 형태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역시 현장에서 시신을 본 고유정이 무엇이라고 진술할지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 남편에게만 집중됐던 초동수사… 경찰이 놓친 것들
사건은 지난 3월 2일 일어났다. 이날은 아이가 재혼한 친아빠와 함께 살기 위해 청주로 온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부자(父子)는 함께 안방에서, 새엄마는 다른 방에서 잠들었다. 아빠가 눈을 떠보니 아이는 숨져있었다. 엎드린 채로 얼굴이 짓눌린 상태였다.
경찰은 A씨의 과실치사에 집중했다. A씨가 경찰 조사를 받은 건 무려 5차례다. 사건 직후 청주상당경찰서에서 첫 조사를 받았고, 1차 부검 결과가 나온 5월 2일 두번째 조사를 받았다. 같은 달 28일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았고, 지난달 3일에는 약 5시간에 걸쳐 집중 조사를 받았다. 3일 뒤에는 청주 경찰 2명이 A씨가 머물고 있는 제주도에 내려와 출장조사까지 진행했다. 반면 고유정이 의붓아들의 죽음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은 건 단 한차례다.
A씨는 “나를 조사했다는 사실만 두고 불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왜 고유정은 조사하지 않았나. 경찰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충북청 형사과는 “사실상 A씨에 대한 경찰 조사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총 3회”라며 “고유정에 대한 조사는 이후 할 예정이었다”고 반박했다.
경찰은 지난달 고유정과 A씨가 거주하던 청주의 한 아파트를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고유정이 평소 사용했던 가방과 노트북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는 A씨가 직접 제주지검에 증거물로 제출했다.
가방에는 지퍼백 수십장과 물티슈 등이 들어있었다. 특히 물티슈 뒷면에는 졸피뎀 처방전 라벨이 붙어있었다. 고유정이 전남편 강모씨를 살해하기 위해 구입한 뒤 숨겨둔 것으로 추정된다. 지퍼백 역시 평소에는 들고 다니지 않았다고 A씨는 주장했다. 범행 계획하는 과정에서 구입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노트북도 놓쳤다. 경찰은 청주 자택에 있던 컴퓨터 3대 중 2대만 압수했다. 노트북 하드디크스 2개는 A씨가 사비를 들여 직접 디지털포렌식을 맡겼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