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에 FA 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 취지는 ‘자유로운 이적’에 있었다. 트레이드가 아니면 팀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던 당시 구단 위주의 구조를 깬 혁신 조치였다. 직장 선택의 자유를 부여한 게 FA 제도였다.
그런데 또다시 근본 정신을 뒤흔드는 제도가 탄생하려 하고 있다. 프로야구선수협회는 지난해 KBO와 10개 구단이 제시했던 계약 기간 4년, 총액 80억원 상한제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다만 현행 9년(고졸의 경우)으로 되어 있는 FA 취득 연수 1년 축소, 보상선수 폐지, 최저 연봉 인상 등을 조건으로 달았다.
물론 프로야구선수협회 차원에선 지난 겨울 어려움을 겪었던 중소형 FA들의 사례를 들어 먼저 손을 내민 것으로 이해는 된다.
그러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것 모두 당연히 프로야구 선수들이 취해야 하는 사항들이다. 보상선수 문제를 먼저 보자.
현행 KBO 규약 172조에는 영입 구단은 FA 선수의 연봉 200%와 ‘20인 보호선수를 제외한 1명’인 보상선수를 원 소속구단에 내주도록 하고 있다. 아니면 연봉의 300%를 지급해야 한다.
구단들은 대부분 보상선수로 젊은 유망주를 지명한다. 그러기에 구단들은 베테랑 FA 선수의 경우 유망주를 내주면서까지 영입하는 데 있어 주저할 수밖에 없다. 보상선수 규정이 베테랑 FA 선수의 이동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보상선수 규정은 일본프로야구(NPB)에서 차용했다. 그러나 상황이 다르다. 일본에선 팀내 연봉 순으로 FA 선수를 세 등급으로 나눠 C급 선수 이적의 경우 보상선수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물론 메이저리그에도 없는 보상선수 제도다.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처럼 FA등급제를 우선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
프로야구선수협회가 당연히 얻어야 할 권리를 협상을 통해 ‘족쇄’를 스스로 채우면서 얻어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FA자격 취득 연수 축소 또한 그렇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6년이다. 2군에 있었어도 적용된다. 당연히 줄여야 하는 것이 시대 흐름임에도 협상을 통해서 얻으려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최저 연봉 인상은 정운찬 KBO 총재도 필요성을 인정한 사항이다. 그런데 그것을 구걸하다시피 얻으려 하는 것은 너무나 저자세다.
‘80억원 상한제’는 FA제도 근간을 흔드는 족쇄임을 알아야 한다. FA 제도의 근본 정신을 잊어선 안 된다. 돈에 제약을 받고 보상 선수에 제약을 받는 FA는 진정한 FA라고 할 수 없다. 구단만을 위한 FA가 되는 것이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