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선수협회가 지난 15일 제2차 이사회를 열고 FA 계약 상한제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KBO에 전달했다고 김선웅 사무총장이 1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밝혔다.
KBO와 10개 구단이 지난해 제시했던 계약 기간 4년, 80억원 상한선이다. 선수협회는 다만 FA자격 취득 연한 1년 축소, 보상선수 폐지, 최저연봉 인상 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단서를 달아 KBO에 논의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소형 FA를 우선하겠다는 이대호 집행부의 의지도 읽혀진다.
그러나 방향이 잘못됐다. NC 다이노스는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양의지(32)와 계약 기간 4년, 총액 125억원의 FA 계약을 체결하고 데려왔다. SK 와이번스는 최정(32)과 계약 기간 6년, 총액 106억원의 FA계약을 맺고 잔류시켰다. 10개 구단 스스로 제시했던 계약 기간 4년, 80억원 상한선을 먼저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문제는 80억원의 상한선을 구단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무시하거나 악용할 소지가 다분하다. 지금도 많은 FA 선수들이 옵션 또는 명목으로 공개된 FA 총액보다 많은 돈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 안지만의 케이스에서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불법 거래 또는 뒷돈 거래가 성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또한 80억원이라는 제한을 두는 것은 시장 질서를 위배하고 공정한 경쟁 논리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잘하는 선수의 경우 많은 돈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많은 돈을 받고도 못하는 게 문제이지, 공정한 대가를 받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수 선수들의 외부 유출도 우려된다. KBO리그에서 충분히 돈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고등학교 졸업 선수들의 해외 진출 러시가 잠잠해진 상태다. 그런데 이를 제한해 버리면 국내를 떠날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각 구단들이 구단 경영 어려움을 선수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경영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몸집을 줄여 수지 타산을 맞추겠다는 안이한 발상이다.
규제는 풀어야 마땅하다. 선수협이 중소형 FA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벽을 쌓는 것은 프로야구의 질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그렇지 않아도 저질 야구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수 선수들이 80억원 상한선에 막혀 KBO리그를 떠난다면 정말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
더구나 몸값을 줄인다고 KBO와 10개 구단은 신규 외국인 선수 몸값을 100만 달러로 제한했다. 두산 베어스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 정도를 제외하고 눈에 띌만한 활약을 펼치는 신규 외국인 선수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80억원 상한선을 두기에 앞서 구단의 경영 지표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기존 FA 선수들에게 지급됐던 ‘숨겨진 옵션’도 솔직히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에게 80억원 상한선을 부여할 게 아니라 구단 연봉 총액에 상한선을 두는 샐러리캡을 도입하는 게 맞다. 이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선 사치세를 물리면 된다. 미국 프로세계에서 모두 활용하고 있는 제도다.
몸값 거품 논란은 선수가 아닌 구단이 만든 혼란이다. 구단을 견제하고 단속할 장치 마련이 우선인 것이다. 그런데도 상한선 도입을 먼저 수용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다. KBO와 10개 구단의 논리에 끌려다니는 프로야구선수협회는 논의 출발점을 재정립해야 한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