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 “사회적 가치 확산으로 시장 개념 사라질 것”

입력 2019-07-18 11:16 수정 2019-07-18 14:20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회적 가치 확산이 전통적 개념의 시장을 붕괴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1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4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강연자로 나서 “불특정 다수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 가격을 결정한다는 시장은 미래에 사라질 것”이라며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각각 소비자가 원하는 걸 알게 될 수 있게 돼 고객의 정의를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런 변화를 빵집 사례로 설명했다. 예전에는 싸고 맛있는 빵을 만드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그걸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밀레니얼 세대는 친환경, 건강빵 아니면 안 먹는다. 이런 경향은 갈수록 심해진다”면서 “빵집 입장에선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특정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빵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윤 외에 환경 문제 등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소비자를 넘어 투자자까지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글로벌 광산 중개업체 글렌코어가 투자자들의 압박에 올해 석탄 생산량을 1억5000만t으로 제한키로 한 것을 예로 들며 “이제는 재무적 투자자까지 이윤 외에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문제)까지 관심을 가지며 투자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부터 투자자까지 사회적 가치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건 위기의식 때문이라는 게 최 회장의 분석이다. 최 회장은 “사회 문제가 발생하는 속도가 해결하는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문제는 점점 커진다”며 “사회가 불안정하면 언젠가 사회가 붕괴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퍼져 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리스크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소비자에게 주지 못하면 기업은 외면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SK그룹은 사회적 가치를 중요한 경영 지표로 삼고 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최 회장은 “아직도 상당히 부족하다”고 자평했다. 최 회장은 “‘딥 체인지’, ‘서든 데스’ 등 거친 표현을 쓰면서 3년간 변화가 왜 필요한지 이야기했지만 ‘이러다 말겠지’하는 냉소를 극복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면서 “평가 지표를 만들고 핵심성과지표(KPI)에 50%에 반영한다고 측정 도구를 만드니 이게 지속해서 가는 거라는 걸 인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내산 불화수소를 대기업이 사주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 최 회장은 “품질 문제 때문인데 차차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일본 수출 규제 해법을 묻는 질문에는 “각자 위치에서 각자 역할을 천천히 잘 해나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주=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