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는 진품” 주장한 前 국립현대미술관 실장 무죄 확정

입력 2019-07-18 10:31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국민일보DB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주장하다가 천 화백의 유족들로부터 고소당한 정준모(62)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 전 실장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18일 밝혔다. ‘미인도 위작 논란’은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회에서 공개한 ‘미인도’를 두고 천 화백이 “내가 그린 것이 아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화랑협회의 진품 판명으로 잠잠해졌던 논란은 1999년 재점화됐다. 청전 이상범 화백의 그림을 위조해 체포된 화가 권춘식씨가 “‘미인도’는 내가 위조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미인도를 놓고 ‘작가는 가짜, 국립현대미술관은 진짜’라고 주장하는 일은 계속됐다. 2015년 천 화백의 별세 이후 미인도 위작 논란은 다시 시작됐다. 천 화백 유족은 2016년 “정 전 실장이 허위사실을 유포해 천 화백의 명예를 지속적으로 훼손하고 있다”는 성명서를 냈다. 정 전 실장이 미인도는 진품이라는 내용의 기고문을 언론사에 보내 기사로 널리 보도되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정 전 실장은 기고문에서 천 화백이 진품 주장에 대한 반론을 하지 않고 오직 위작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한다고 했다. 천 화백 유족은 정 전 실장 등 전현직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6명을 고소·고발했다.

검찰은 2016년 12월 미인도를 진품으로 결론내리며 25년간 이어져온 미인도 위작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X선, 컴퓨터 영상분석, DNA 분석 등 과학적 감정 방법을 총동원한 결론이었다. 고소된 6명 중 5명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정 전 실장에게는 허위사실에 의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적용, 기소했다. 천 화백이 한국근대회화선집 편집과정에 참여했다는 등 일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단정적으로 밝혔다는 것이었다.

1·2심은 “기고문이 객관적 사실에 반하더라도 미인도에 대한 사회적, 역사적 평가가 달라질 여지가 있을 뿐이고 천 화백에 대한 사회적, 역사적 평가에 어떠한 변화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정 전 실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미술품은 완성된 이후에는 작가와는 별개의 작품으로 존재하므로 작가의 인격체와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 “미술품의 진위 논란이 곧바로 작가의 사회적 평가를 해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판시도 있었다.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이 옳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