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노회찬에게 이제야 작별을 고하려 한다”

입력 2019-07-18 09:32
지난해 7월, 노회찬의 빈소를 찾았던 앵커 손석희. 뉴시스


눅진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7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조문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고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그리움으로 조문객들은 펑펑 눈물을 흘렸다. 고인은 바로 진보정치의 상징과도 같았던 정치인 노회찬. 2005년 삼성에서 ‘떡값’을 받은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하고 호주제폐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정리해고제한법 등을 발의했던 그는 한국사회 가장자리에 놓인 사람들을 보듬으려 한 인물이었다.

노회찬의 1주기를 앞두고 추모집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입니다’(인물과사상사)가 출간됐다. 고인이 생전에 했던 인터뷰를 모았고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로 했던 연설문도 담겨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손석희 앵커, 강수돌 고려대 교수, 김종대 정의당 의원, 우석훈 경제학자 등이 고인의 생전 모습을 추억한 글이다.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글은 손석희가 썼다. 손석희는 “한 사람(노회찬)에 대해서 그것도 그의 사후에 세 번의 앵커 브리핑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글을 시작한다. 이어 “그의 놀라운 죽음 직후에 제가 알고 있던 노회찬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를 한동안 고심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 논란이 됐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발언을 언급한다. 오세훈이 지난 4월 보궐선거 유세 현장에서 했던,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서야”라고 했던 발언이었다. 손석희는 이 말을 도마에 올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거리낌 없이 던져놓은 그 말은 파문에 파문을 낳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순간에 그 덕분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노회찬에 대한 규정 혹은 재인식을 생각해냈던 것입니다. 즉, 노회찬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을 버린 사람’이라는 것. 우리는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그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버린 그 차디찬 일갈을 듣고 난 뒤 마침내 도달하게 된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의 동갑내기 노회찬에게 이제야 비로소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한 조문객이 지난해 7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진 노회찬의 빈소를 찾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국민일보DB


우석훈은 노회찬을 “늘 명랑하고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추억했다. “사람들을 잘 웃겼던 친구”로 기억됐으면 한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강수돌의 회고담도 비슷하다. “노회찬은 노동자의 친구답게 쉬운 말로 사람을 웃겼다”고, “온갖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위트와 해학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고 회상했다. 김종대는 고인을 떠올리는 게 고통스럽다고 적었다. 국회 본회장에서 노회찬의 자리는 그의 옆자리였다. 김종대는 “우리는 아직도 노회찬을 보내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벌어지는 타락한 정치를 통해 ‘저것이 바로 노회찬의 죽음을 초래한 몸통’이라고 말해야 한다.”

책장 곳곳에 담긴 노회찬의 육성은 독자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가령 노회찬은 어느 시대건 “시대의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과연 이 시대의 양심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IMF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고도성장 속에서 희생만 강요당한 노동자와 농민 등 서민들의 편에 서는 게 시대의 양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