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수 전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51억원’ 추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삼성이 자금을 지원해줬다”고 법정 진술했다. 이 전 실장은 이 전 대통령이 17대 대선에 당선되기 전과 후, 2차례 미국 로펌 ‘에이킨 검프’ 소속 김석한 변호사를 통해 자금 지원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17일 ‘다스’ 비자금 횡령·뇌물수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공판을 열었다. 이날은 이 전 부회장과 최도석 전 삼성전자 경영총괄담당 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앞서 검찰은 삼성이 다스 미국 소송비 명목으로 에이킨 검프에 51억6000여만원을 추가 납부한 정황을 포착했다. 법원이 공소장 변경을 허가하면서 이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 액수는 기존 67억원에서 119억원으로 늘었다.
이 전 부회장은 증인신문 과정에서 “에이킨 검프의 김석한 변호사가 자금을 지원해달라고 두 차례 요청했다”며 “한 번은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이었고, 한 번은 대통령 취임 이후”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과 삼성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 전 부회장은 김 변호사의 요청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보고했고, 이 회장의 승인을 받아 당시 최도석 삼성전자 경영총괄담당 사장에게 ‘김 변호사 요청대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검찰 측에서 ‘(추가 확인된 삼성 미국법인의 송금 내역이) 이 전 대통령에게 자금을 지원해주는 의미였다고 보면 되느냐’고 묻자 이 전 부회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다만 김 변호사에게 자금 요청을 받은 구체적인 시기나 ‘다스’라는 언급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김 변호사가 이 전 대통령의 이름을 빌려 개인적 이득을 취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김 변호사를 안 지 오래 됐고, 이건희 회장님과도 잘 아는 사이고, 삼성에 거짓말 해서 어떻게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증인으로 출석한 최 전 삼성전자 사장도 이 전 부회장과 비슷한 취지로 진술했다. 최 전 사장은 두 차례 이 전 부회장의 지시를 받고 삼성 미국법인 직원에게 연락해 ‘에이킨 검프에서 인보이스가 오면 그대로 처리하라’ ‘김석한 변호사에게 연락이 오면 (요청한) 그대로 해줘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