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등 수출규제로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오는 8월 양국은 향후 관계 개선에 나설지 파국으로 치달을지 기로에 설 것으로 보인다. 8월은 일본이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할 것으로 예상되는 달이다. 또 무역갈등이 안보 분야로도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신고기한도 예정됐다. 다만 미국이 양국의 치킨게임에 개입을 시사해 조기에 관계 개선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교도통신은 17일 논설 기사에서 “한·일관계가 전후 최악인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양국이 관계 복원을 꾀한다면 예상되는 결론 시기는 연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GSOMIA 연장을 그 시금석으로 점쳤다.
지소미아는 1년 단위로 갱신하며 오는 8월 24일이 신고기한이다. 연장을 원치 않는 쪽이 협정 만기 90일 전(다음달 24일)까지 통보해야 하고, 파기 의사 통보가 없으면 자동 연장된다. 2016년 11월 체결된 지소미아는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1차 목표다. 기존의 한·미, 미·일 협력에 한·일 축까지 더해 북한 비핵화 등에 대응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을 공고히 하는 의미가 있다.
교도통신은 “양국이 의지를 보일 경우 (지소미아를 통해) 결정적인 위기를 피할 수 있고, 다음 단계로 정상회담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며 “오는 12월 개최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삼이 이뤄질 경우 관계 복원을 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소미아 파기 가능성은 낮다. 양국과 동맹관계인 미국도 “지소미아가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경제 분야 갈등으로 안보 분야가 교차오염 돼선 안 된다”고 전했다. 사실상 ‘레드라인’을 제시했다는 평이 나온다. 다만 교도통신은 방위 분야에 정통한 자민당 의원을 인용해 “일본 정부 내에서 더 이상 한국군에 공통의 행동규준이 통하지 않는다”며 “이제 우방국이 아니라 중국·러시아와 같은 수준으로 취급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나온다”고 전했다. 완전히 안심할 순 없는 셈이다. 만약 일본이 지소미아 파기 의사를 내비칠 경우 미국도 더 이상 방관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양국의 갈등이 해소될 계기는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교도통신은 정부 관계자이 “(한국의) 위안부 문제 배신과 징용 소송에서도 고배를 마시게 계속 된 아베 총리의 분노는 상당하다”며 “한국 정권이 계속되는 한 강경 자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특히 지소미아에 앞서 일본은 8월 중순에 특정 국가에 대한 외국환관리법상의 우대제도인 ‘화이트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할 것으로 보이는 등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한·일 갈등 상황 개입 가능성을 시사해 보다 빨리 양국의 관계가 개선될 계기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방한 중인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부무 신임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미국은 가까운 친구이자 동맹으로서 이들의 해결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방문해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면담한 뒤, 한·일 갈등에 미국이 관여할지 묻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윤순구 차관보도 이날 약식회견에서 “스틸웰 차관보는 미국도 대화재개를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되는데 도울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