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한 김준기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에 대해 경찰이 법무부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요청하기로 했다. 김 전 회장은 앞서 2017년 7월 비서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질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건너간 뒤 아직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5월 두 사건 모두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는데, 최근 김 전 회장이 가사도우미 성폭행 건으로 추가 고소 당한 사실이 알려지고 엄벌 여론이 들끓자 뒤늦게 신병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관계자는 17일 “김 전 회장은 미국에서 이민 변호사를 고용해 미 당국에 질병 치료를 이유로 체류 자격 연장을 신청, 6개월마다 합법적으로 체류 기간을 연장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2017년 11월 김 전 회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미국 인터폴에 국제공조 수사를 요청해 적색 수배가 내려졌지만 국내로 송환하지는 못했다. 김 전 회장의 여권은 지난해 6월 이미 무효 조치된 상태다. 이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인터폴 적색 수배만으로 검거·송환이 불가능하다”며 “범죄인 인도를 통해서만 피의자를 송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범죄인인도법에 따르면 대한민국 법률을 위반한 범죄인이 외국에 있는 경우 해당국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할 수 있는 주체는 법무부 장관이다. 검사는 범죄인 인도 청구가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법무부 장관에게 이를 건의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2017년 9월 김 전 회장이 비서 성추행 혐의로 고소 됐을 때 검찰과 범죄인 인도 청구 여부를 논의했으나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났다”며 “당시만 해도 혐의가 중하지 않았고 미국에 합법 체류하고 있는 점 등이 고려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지난해 1월 가사도우미 A씨가 김 전 회장을 성폭행 혐의로 추가 고소한 뒤로도 1년 6개월 동안 신병 확보를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가사도우미 성폭행 사건은 최근에야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A씨의 자녀는 지난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김 전 회장을 법정에 세워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해 10월부터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을 통해 미 수사당국과 김 전 회장의 소재를 파악해왔고 강제 추방도 요청했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