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 벤츠 리무진, 롤스로이스 팬텀, 렉서스 LX570 등. 여태 밝혀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용차량이다. 하지만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사치품으로 분류돼 북한 수출이 금지된 차량이기도 해, 북한으로 흘러간 경위는 미스터리였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의 전용차량인 메르세데스 벤츠 마이바흐 S600 2대가 네덜란드→중국→일본→우리나라→러시아를 통해 종착지인 북한으로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NYT는 밀수 네트워크를 추적하는 비영리 연구기관 미국 고등국방연구센터(CADS)의 ‘북한의 전략적 사치품 조달 네트워크’ 분석 보고서와 자체 취재를 통해 벤츠가 북한에 전달되는 약 5개월간의 과정을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와 올해 열린 북·미 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등에서 메르세데스 벤츠와 렉서스 LX570 등을 타고 등장했다. 북한이 해당 차량을 도입했던 시기는 모두 대북제재 결의안 제1718호(2006년), 제2094호(2013년)가 발효된 시점 이후였다. 유엔 제재위는 “명백한 제재 위반”이라면서도 북한으로 흘러 들어간 경위를 설명하지 못했다.
시작은 네덜란드였다. NYT는 벤츠 2대가 지난해 6월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에서 두 대의 컨테이너에 나뉘어 실렸다고 전했다. 한 대에 50만 달러(약 6억원)에 달하는 차량을 누가 처음에 구매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차이나 코스코시핑 그룹이 운송을 맡았다.
컨테이너는 41일 뒤 중국 다롄에 도착했고, 하역 후 8월 26일까지 다롄항에 머물렀다. 컨테이너는 9월 18일 다시 일본 오사카에 도착했고, 27일 오사카항을 떠나 3일 뒤 부산으로 입항했다.
컨테이너는 다시 10월 1일 토고 국기가 그려진 화물선 DN5505호로 옮겨져 러시아 나홋카항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컨테이너를 실은 선박의 자동식별장치(AIS)는 18일간 꺼져 행방이 묘연했다. 이는 제재를 피해 북한을 오가는 선박들이 추적을 피하기 위해 쓰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AIS가 다시 켜졌을 땐 DN5505호는 러시아가 아닌 한국에서 발견됐다. 벤츠가 아닌 2588t의 석탄을 적재한 상태였다. 세관 자료에는 DN5505호가 나홋카항에서 석탄을 적재했다고 기재됐을 뿐 차량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NYT와 연구진은 비행추적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지난해 10월 7일 북한의 고려항공 화물기 3대가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벤츠가 러시아에서 북한에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했다. 화물기가 도착한 블라디보스토크는 나홋카 항에서 멀지 않아 벤츠 차량이 이를 통해 북한으로 수송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NYT는 지난 1월 31일 컨테이너에 적재됐던 차량과 동일 기종의 차량이 북한 평양 노동당 청사로 이동하는 것을 포착했고, 김 위원장의 예술 대표단 사진 촬영에서 같은 차량이 등장했다고 전했다. 다만 김 위원장의 차량 고유 번호를 확인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최근 수년간 북한이 800대를 넘는 고급 승용차를 구매한 것으로 보고 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