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발생한 서울 동작구 상도유치원 붕괴사고 현장을 16일 찾아갔다. 사고 현장은 10개월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반이 주저앉으면서 밖으로 드러난 지면에는 파란색 방수포가 덮여 있었다. 그 위에 일부 구조물에 지지대를 설치한 것이 전부였다.
현장 건너편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었다. 사고 현장으로 잘못 찬 공을 주우러 갔다가 자칫 큰 사고가 날까 우려스러웠다. 상도동에서 25년을 살았다는 김모(74)씨는 “아직까지 사고 복구 처리가 안 된지 몰랐다”면서 “올해 비가 적어서 그렇지 태풍이라도 오면 어쩔 셈이냐”며 안타까워했다. 현장에서 만난 시공사 관계자는 “사고 후 잔해를 철거한 뒤엔 공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면서도 자세한 상황을 묻는 질문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곳에선 지난해 9월 다세대주택 공사장에서 흙막이가 무너져 유치원 건물이 10도 이상 기울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는 현장을 찾은 뒤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며 철저한 수습을 지시했다.
하지만 사고 후 10개월이 지나도록 복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다세대주택 시공사와 주무관청이 지리한 법정다툼만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직후 서울시교육청과 동작구 등은 학부모 의견을 수렴한 뒤 자체 연구용역을 진행해 유치원 건물을 새로 짓는 방향으로 복구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사고 처리비용과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민·형사사건은 물론 행정소송도 이어졌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지금까지 휘말린 송사 만도 3건이었다.
동작구는 사고 후 철거업체를 지정해 기울어진 유치원 건물의 잔해를 철거하고 비용 1억1000여만원을 시공사에 청구하려 했지만 시공사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5월 시공사가 유치원 철거 비용을 대신 납부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동작구청은 즉각 항소한 상태다.
동작구 관계자는 “상도초 운동장과 붕괴 현장 사이에는 안전펜스를 설치하고 유치원 건물 외벽에는 가림막을 설치해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면서 “구 재정을 들여 잔해를 수습하고 비용을 청구했는데, 철거 의무가 없다는 시공사 주장과 법원 판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사고 책임을 놓고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서울시교육청이 시공사를 상대로 6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유치원 건물을 전면 개축하는데 필요한 경비와 안전진단비, 임시로 쓰고 있는 유치원 건물의 임대료 등을 합친 뒤 재난공제회구호기금을 공제해 배상액을 산출했다”면서 “현재로서는 복구 계획을 검토하는 단계”라고 털어놨다.
경찰은 사고가 발생한 지 4개월만인 지난 1월 시공사 관계자 등 11명을 건축법 및 건설안전기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검찰 조사는 속도가 제대로 붙지 않고 있다. 검찰은 “사건을 넘겨받은 것은 맞지만 수사 진행 상황을 확인해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고를 미연에 막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건물 붕괴 등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묻는 법정다툼이 시작되면서 현장은 증거 보존 때문이라도 방치될 수밖에 없다”며 “공사 안전 감독을 공무원 뿐 아니라 교수 등 전문가들에게도 역할을 나누는 방식으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