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남매 엄마로서 ‘저출산파이터’로 잘 알려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60)이 첫 여성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으로 16일(현지시간) 선출됐다. 그는 독일의 첫 여성 국방장관으로도 유명하다.
폰데어라이엔은 최근 자국 내에서 정치적 입지가 줄어들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개각 명단에 포함될 것이란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2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장으로 깜짝 추천된 후 집행위원장 자리에 오르는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그는 전 독일 니더작센주 총리인 에른스트 알브레히트를 아버지로 뒀다. 알브레히트는 EU 첫 집행부에 참여한 일원이자 이후에 사무국장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폰데어라이엔은 아버지가 EU 집행위원회 관료일 당시 벨기에 브뤼셀 교외에서 태어나 자란 뒤 13세에 독일로 이주했다. 덕분에 그는 프랑스어에도 매우 능통하다.
영국 런던 정경대(LSE)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독일 하노버 의대에 진학해 의학박사를 받은 그는 산부인과 의사 겸 의대 교수로 일했다. 그러다 42세의 늦은 나이로 중도보수 기독민주당 소속으로 니더작센주 지방의회에 진출했다. 같은 주에서 총리를 지낸 아버지의 후광을 톡톡히 본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폰데어라이엔은 메르켈 총리의 눈에 띄어 2005년 가족여성청년부 장관을 맡으며 화려하게 중앙 정치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고, 2013년 12월부터는 독일의 첫 여성 국방부 장관을 맡았다.
폰데어라이엔은 2남 5녀의 ‘7남매 엄마’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다산(多散)을 몸소 실천한 사람답게 출산 증가가 경제발전에 기여한다는 지론을 갖고 ‘저출산 파이터’로 활약했다. 그 일환으로 남성의 2개월 유급 육아휴직 제도를 밀어붙였고, ‘워킹맘’이 육아와 업무를 병행할 수 있는 사례가 늘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그는 남편이 미국 스턴퍼드대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은 4년여 정도만 전업주부로 지냈고, 이후는 의사인 남편이 자녀 양육을 주로 책임져왔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워킹맘의 일·육아 병행 사례 증가’를 주장해온 것이다. 그는 “더 많은 남성들이 내 남편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었다.
폰데어라이엔은 대기업 이사회 내 여성 비율 할당제와 최저임금제 등 중도진보의 사회민주당이 주장한 정책을 메르켈 총리의 반대 속에서 밀어붙이기도 했다. 노동부 장관일 때는 근로자들의 ‘웰빙’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근무시간 외에는 연락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런 기조는 국방부 장관을 맡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군대를 ‘최고의 직장으로 만들자’는 모토를 가지고 사병 복지에 많은 힘을 쏟았다. 이에 메르켈 총리의 유력한 후계자 중 한 명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2017년 총선 이후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 그룹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국방부 내에서 여러 문제가 불거지며 입지가 줄어들고 있었다. 이런 배경 탓에 폰데어라이엔이 EU의 수장인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된 것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