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착륙 50주년, 다시 불붙은 경쟁… 이제는 체류가 목적

입력 2019-07-17 06:33 수정 2019-07-17 09:18
1969년 7월 21일 달 표면에서 우주인 버즈 올드린이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선 이글 옆에 서 있다. 올드린의 헬멧 선바이저에 비친 우주인이 닐 암스트롱이다. NASA 홈페이지

“이 순간은 인간에겐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겐 위대한 도약입니다.”

1969년 7월 21일 그리니치 평균시(GMT) 기준 오전 2시56분(미국 동부시간 20일 오후 10시56분). 미국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발을 내디딘 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에 보낸 메시지다.

달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다. 지구와 달과의 평균 거리는 38만km 정도. 달 착륙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이 다른 천체에 발을 디딘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인류의 발자국이 남겨진 달은 더 이상 신화나 상상 속 존재가 아니었다. 당시 TV로 전 세계에 생중계된 달 착륙은 사람들의 인식과 세계관을 확장함으로써 과학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소련의 경쟁에서 비롯된 달 착륙

1960년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치열한 우주 경쟁을 벌였다. 57년 소련이 쏘아 올린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직접적 도화선이 됐다. 소련은 또 61년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지구 궤도에 진입시켰다가 무사히 귀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폴로 11호의 세 우주인 닐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 버즈 올드린(왼쪽부터). NASA

치열한 체제 경쟁을 벌이던 때여서 미국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당시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우주에서 소련을 이길 수 있는 프로젝트가 필요했다. 그리고 부통령 린든 존슨의 제안으로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는 아폴로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아폴로 계획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64년까지 15차례에 이르는 무인 달 탐사 임무는 모조리 실패했다. 66년 무인 우주선 서베이어 1호가 마침내 달 착륙에 성공하면서 미국은 기술력에서 소련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유인 달 탐사까지 극복해야 할 과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67년에는 우주선 화재로 우주인 3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주선의 사령선이 달 궤도를 도는 동안 착륙선이 달에 내려가 임무를 수행한 뒤 다시 도킹해 지구로 돌아오는 방식이 채택됐다. 미국은 무인 우주선을 여러 차례 달로 보내 달의 궤도를 파악하고 달 표면에 대한 지도를 제작했다. 그리고 69년 7월 16일 미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아폴로 11호가 발사됐다. 우주선에는 암스트롱 외에 에드윈(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 등 3명이 탑승했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은 1930년생으로 나이가 모두 같았다.

지난 2009년 아폴로 11호의 세 우주인이 백악관에서 열린 달 착륙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 닐 암스트롱(왼쪽부터). AP뉴시스

아폴로 11호가 달에 접근하자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탐사선 이글로 옮겨탔다. 콜린스가 남은 사령선 컬럼비아는 달의 궤도를 돌았다. 이글이 21일 ‘고요의 바다’로 이름 붙인 달 분화구에 착륙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달 표면에서 2시간13분12초 머물면서 토양 샘플을 수집하고 사진을 찍은 뒤 컬럼비아와 도킹했다. 이글은 이후 달 궤도에 버려졌다.

그런데, 달에서 촬영된 우주비행사나 발자국 사진의 주인공을 암스트롱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올드린이다. 암스트롱의 사진은 올드린의 헬멧 선바이저에 비친 모습이 유일하다. 세 우주인을 태운 컬럼비아는 7월 24일 하와이 인근 바다에 무사히 안착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은 소련에 대한 미국의 최종 승리를 상징한다. 미국이 상징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기술력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중국·인도·일본 등 신흥국까지 달 탐사에 도전장

미·소 우주경쟁의 상징이었던 달 탐사 경쟁은 1970년대 들어 시들해졌다. 지속적인 연구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명분이 사라진 데다 막대한 예산에 대한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당시 아폴로 프로젝트의 예산이 연방 예산의 4%에 달했을 정도였다. 소련 입장에서도 이미 패배한 싸움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달을 대신해 화성, 명왕성, 소행성 등에 관심이 커지면서 미국은 72년 아폴로 17호 이후 달에 우주비행사를 보내지 않았고 소련도 76년 루나 24호를 끝으로 달에 발길을 끊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달 탐사는 최근 다시 불붙었다. 미국과 소련의 양자 구도에 중국, 일본, 인도 등 신흥 국가들이 가세한 모양새다. 중국은 지난 2007년 창어 1호를 달 궤도에 보낸 것을 시작으로 2013년 창어 3호를 발사해 탐사 로버 ‘위투(옥토끼)’를 표면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올해 1월 창어 4호가 세계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다. 미국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중국은 올해 말에는 달 표면의 표본을 수집해올 창어 5호 발사할 계획이다. 그리고 2025년까지 달 기지를 구축하고, 2030년에는 상주 인력을 보내겠다는 계획이다.

2008년 찬드라얀 1호를 달 궤도에 보냈던 인도는 달 착륙을 목표로 한 찬드라얀 2호를 발사할 계획이다. 당초 지난 14일 발사할 예정이었지만 기술적 문제로 인해 9월로 연기됐다. 최근 소행성 탐사에서 성과를 낸 일본도 달 탐사선 셀레네 1·2호를 발사할 계획이다. 러시아도 다시 달 탐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66년 세계 최초로 달에 무인 탐사선을 착륙시켰던 러시아는 미국에 유인 착륙을 추월당한 뒤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2025년까지 탐사선 루나 28호를 발사한 뒤 2030년 유인 달 착륙에 도전할 계획이다.

미국은 달 탐사에 NASA는 물론 민간까지 가세했다. 미국은 지난 3월 우주인을 다시 달에 착륙시키는 계획을 2028년에서 2024년으로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 NASA는 그리스 신화 달의 여신에서 따온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2024년까지 달 궤도 우주정거장 ‘루나 게이트웨이’를 만들고, 아르테미스 1호부터 8차례 우주선을 쏠 계획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워싱턴 스미소니언 국립우주항공박물관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5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NASA는 탐사 속도를 높이기 위해 민간업체들과의 파트너십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민간기업들이 NASA보다 먼저 달에 도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설립한 블루오리진은 지난 5월 2024년 달에 우주인을 보낼 착륙선 블루문을 공개했다. 이외에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리처드 브랜슨의 버진 갤럭틱 등은 달로의 상업적 우주여행을 계획중이다. 달 탐사와 관련해 국가 간 협력 움직임도 보인다. 미국은 루나 게이트웨이 개발에 유럽우주기구·일본·캐나다·러시아 등과 게이트웨이 공동 개발 협약을 맺었다.

최근 달 탐사가 활발해진 것은 달이 화성이나 소행성 등 다른 천체로 가는 전초기지로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달 탐사는 단순 착륙이 아니라 수주일씩 장기 체류가 목적이다. 게다가 달에 자원이 풍부한 데다 과거와 달리 달의 극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기술이 많이 개발된 것도 최근 활발해진 달 탐사 경쟁의 배경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