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건든 美인종주의 욕망… “또 다른 미국 예리하게 짚어”

입력 2019-07-17 05: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인종차별 발언을 들은 미국 민주당의 비백인·진보·여성 하원의원 4인방이 15일(현지시간) 의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백인’ 미국 시민권자인 여성 의원들을 겨냥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미국 내 인종차별 논란을 또 한 번 촉발시켰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 대다수인 백인을 타깃으로 한 편가르기 성격이 다분하다. 그 이면에는 ‘또 하나의 미국’ 즉 인종주의를 옹호하는 일부 미국의 현실을 예리하게 짚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CNN방송은 15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트럼프의) 인종차별 트윗에는 냉철한 진실이 있다”며 “(미국은) 오랜 시간 두 개의 미국으로 공존해왔다”고 보도했다.

하나의 미국은 ‘자유의 여신상’으로 대표되는 나라다. 이 나라는 자유롭게 숨쉬길 바라는 가난하고 지친 이민자들에게 열려있다. 반면 또 다른 미국은 원주민을 소탕하고,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만들고, 19세기 말에 중국 이민자들을 배제하고,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수용소에 가둔 곳이다.

CNN은 “트럼프의 인종차별 트윗은 이 다른 미국의 자아를 두드리고 있다”며 “트럼프의 트윗은 미국에 대한 예리한 이해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매우 끔찍한 요소가 있다”며 “소수자들을 향한 트럼프의 언어는 소수자들이 겪을 폭력의 가능성도 높인다”고 덧붙였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이날 “트럼프의 ‘돌아가라’ 요구의 이면: ‘다른’ 미국인을 거부해온 미국의 기나긴 역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이 오랜 시간 유색인종이나 이민자 등을 거부해온 역사를 읊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4명의 민주당 의원들을 원색적으로 공격한 것은 이민에 대한 미국의 동요하는 태도와 일치한다”며 “‘돌아가라’는 레토릭(수사)은 이민 그 자체만큼이나 미국적인 것”이라고 전했다.

WP는 “‘미국은 쓰레기장이 돼가고 있다’ ‘미국은 미국인을 남겨야 한다’는 1920년대 칼뱅 쿨리지의 경고부터 리처드 닉슨의 대통령직을 둘러싼 레토릭 ‘미국: 사랑하라, 아니면 떠나라’까지, 미국의 지도자들은 지난 2세기 동안 미국의 핵심 정체성에 대한 양면성과 투쟁했다”고 설명했다. 또 캘리포니아대의 사회심리학자 토마스 페티그루는 “집에 돌아가라”는 레토릭은 수세대간 이민이 고조되는 시기에 정점을 찍어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비백인·진보·여성 초선인 민주당의 하원의원 4명을 향해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는 트윗을 썼다. 이들 4인방은 당초 같은 당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 펠로시 의장은 미·멕시코 국경에서 붙잡힌 이민자 보호를 위해 46억 달러(약 5조4200억원)의 긴급구호 예산 지원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들은 이민 단속기관들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정책을 돕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이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4인방을 겨냥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4명의 의원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푸에르토리코계), 일한 오마르(소말리아계 무슬림), 라시다 틀라입(팔레스타인 난민 2세), 아이아나 프레슬리(비백인) 의원이다. 이들은 모두 미국 시민권자이고, 소말리아에서 태어나 난민생활을 하다 12세에 미국으로 온 오마르 의원을 뺀 3명은 모두 미국 태생이다. 멜팅팟(Melting Pot·용광로)으로 불리며 이민자들을 수용해 번영을 이룬 미국에서는 자국 시민권자에게 조상의 국가를 따져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은 ‘비백인은 미국인이 아니다’라는 식의 인종차별적 공격으로 여겨진다.

트럼프의 트윗은 유권자의 60% 이상인 백인을 겨냥한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미국 내 인종주의를 자극하는 선거전략인 것이다. 지난해 중간선거 투표 통계를 보면, 전체 투표자 중 백인 비율은 72.8%였다. 흑인의 비율은 12.4%, 히스패닉 9.6%, 아시안 3.7%에 불과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대선을 염두에 둔 언급이라는 점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는 트위터에 “민주당이 우리나라를 나쁘게 말하고 억제되지 않는 열정과 진심으로 이스라엘을 증오하는 사람들을 옹호하는 것을 보니 너무 슬프다”며 “민주당이 이런 수치스러운 행동을 계속 용인하길 원한다면 2020년 투표소에서 여러분을 만나길 더욱 고대한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