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사업장별로 취업규칙 개정작업은 지지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2명 중 1명은 회사가 법 시행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직원들에게 법안 교육·안내를 담당하는 인사담당자들은 법의 내용이 너무 모호해 교육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취업정보 포탈 인크루트는 법 시행 20여일 전인 지난달 26일부터 직장인 회원 1287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했다고 16일 밝혔다. 이 중 인사 담당자는 84명이었다. 설문에 응한 인사담당자 중 자사가 취업규칙 개정에 대비하고 있다는 응답은 53%에 불과했다. 모른다는 응답은 36%나 됐고, ‘아니다’라고 대답한 비율도 11%였다.
취업규칙 대비 기업 중 실제 취업규칙 내용을 변경하거나 안내했다는 응답은 29%로 저조했다. 별도 사내규정을 마련했다는 응답도 15% 수준이었다. 취업규칙에는 금지하는 구체적인 괴롭힘 행위나 피해자 보호조치, 재발방지 조치가 명시돼야 한다. 이런 내용의 취업규칙을 만들지 않으면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직원 대상 사내교육을 준비하고 있다는 응답은 45%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사내교육도 쉽진 않다. 고용노동부가 정한 직장 내 괴롭힘 기준이 모호한 탓이다. 고용노동부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 지위나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으로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업무상 적정 범위인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됐다.
직원 3000명 규모의 대기업 사내교육을 담당한 한 인사담당자는 “어떤 경우에 직장 내 괴롭힘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조직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는데 오히려 ‘후배한테 따돌림당하면 누구한테 도움받느냐’고 호소하더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결국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위반 사례들이 쌓이면 경험에 따라 위반 여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직장인 중에는 2명 중 1명(52%)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준비사항에 대해 모른다고 대답했다. 기업 규모 별로는 대기업 종사자 중 39%가 자사가 법안 시행에 대비 중이라고 응답했고, 중견기업은 22%, 중소기업은 13%, 영세기업은 4%에 그쳤다.
이 때문에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법 적용의 사각지대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한 30대 직장인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접한 것이 전부”라며 “앞으로도 회사가 법 위반만 피할 뿐 제대로 교육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