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강하게 비판한 것에 대해 “(문 대통령의) 지적은 전혀 맞지 않고, 이번 조치는 보복이 아니다”고 정면 반박했다. 문 대통령의 대(對)일 경고성 발언을 일본 정부가 즉각 맞받아치며 한·일 양국 갈등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이유에 대해 일관성 없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당초 수출규제 조치는 일본의 안전보장을 위해 수출 관리를 적절히 하려는 차원에서 실시되는 운용 방침 재검토”라며 “(한국인 징용공 문제에 대한) 대항 조치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항 조치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일관되게 설명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의 지적은 전혀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일본 정부가 당초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수출 규제의 이유로 내세웠다가 이제는 대북제재 위반 의혹을 제기하는 등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이를 반박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무관하다’며 적극 반박에 나섰지만 일본 언론과 정치권은 수출 규제를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전날 칼럼에서 “수출 규제가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의식한 조치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오사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까지 한국 정부로부터 징용 문제에 대한 답이 없자 수출 규제 조치를 집행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권에서도 야당을 중심으로 아베 내각이 징용 문제에 대한 보복으로 수출 규제 조치를 취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의 후쿠야마 데쓰로 간사장은 “징용공 문제 해결에 통상적 대항 조치를 하는 것처럼 국제사회에 보이는 일은 국익상 마이너스”라고 꼬집었고, 공산당의 고이케 아키라 서기국장도 “징용공 문제 대한 보복 조치임이 분명하다”며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지난 3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종결된 징용공 배상 문제를 한국 대법원이 되돌리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양국 신뢰가 훼손돼 한국에 대한 무역 우대 조치를 취소한다”고 했다. 이번 수출 규제가 징용 문제와 연결돼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일본 내에서 한국 정부의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 탓에 수출규제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상황 모면하기식 해명이 이어졌다.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은 각료회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간 일본이 수출 관리 운용을 재검토하는 이유로 들었던 ‘부적절한 사례’에 대해 “한국에서 제3국으로의 구체적인 수출 안건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며 시치미를 뗐다. 일본산 반도체 부품 소재 3종의 북한 등으로의 유출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고, 일본 정부는 한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지난 7일 참의원 선거 관련 여야 당대표 TV토론회에서 “징용 배상에 대한 국제적 약속도 지키지 않은 한국이 무역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에 나선 이유가 한국 정부의 대북제재 위반 때문이라는 뉘앙스를 풍긴 것이다.
한편 스가 관방장관은 이날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관련해 한국 정부에 ‘제3국 포함 중재위원회 설치’에 응할 것을 재차 촉구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국제법 위법 상태를 시정하는 조치를 조속히 취하고, (한·일 청구권) 협정의 의무 사항인 중재위에 응하도록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입장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제3국 중재위 요청 답변 시한은 오는 18일이다. 스가 관방장관은 ‘이대로 18일이 된다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것이냐’는 질문에 “가정하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며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