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미저리’, 김성령 “5년 만의 연극 복귀, 운명처럼 다가와“

입력 2019-07-16 16:57 수정 2019-07-16 17:03
연극 '미저리' 무대 위 모습. 그룹에이트 제공


눈을 뜨니 그녀의 집이었다. 이름은 애니 윌크스. 눈보라 속 교통사고를 당한 베스트셀러 작가 폴 셸던은 그의 광팬 애니 덕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평온함도 잠시, 애니는 폴의 소설 ‘미저리’의 주인공 미저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숨겨둔 광기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녀는 미저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애니는 번뜩이는 눈으로 폴의 귓가에 다가와 속삭인다. “내가 당신의 넘버원 팬이에요.”

연극 ‘미저리’가 돌아왔다. 2015년 미국 브로드웨이에 이어 지난해 국내 초연됐을 때 관객과 평단의 박수를 두루 받은 작품으로 지난 13일부터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막을 올렸다.

극은 1990년 개봉한 영화로 잘 알려진 스티븐 킹의 소설 미저리를 원작으로 한다. 현대 병리 현상 중 하나인 스토킹을 다루는데, 광적인 집착을 보여주는 애니와 작가 폴 사이의 쫓고 쫓기는 심리 싸움을 통해 전 세계 독자와 관객을 사로잡은 서스펜스 스릴러의 정수로 꼽힌다. ‘돌아온 일지매’(2009), ‘궁S’(이상 MBC·2007) 등을 연출하며 스타 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황인뢰 PD가 연출을 맡았다.


연극 '미저리' 무대 위 모습. 그룹에이트 제공


등장인물 간 심리 싸움이 서사의 핵심인 만큼 어떤 극보다 배우들의 깊은 내공이 필수적이다. 브라운관과 스크린, 무대를 오가며 연기력을 뽐낸 국내 최정상급 배우들이 캐스팅됐다. 지난해 폴과 애니로 무대에 올랐던 김상중, 길해연에 더해 안재욱과 김성령이 무대에 오른다.

이들 4명의 배우는 번갈아가며 호흡을 맞춘다. 이해랑 연극상(2015) 수상에 빛나는 길해연은 16일 M씨어터에서 열린 프레스콜 자리에서 “집착으로 일어난 상황이 불안감을 조성하고 무서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초연 때보다 애니의 내밀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4명의 배우들이 번갈아 호흡을 맞추기 때문에 배우의 조합에 따라 색다른 조화를 전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관전 포인트를 전했다.


연극 '미저리' 무대 위 모습. 그룹에이트 제공


김성령과 안재욱은 오랜만에 연극 무대를 찾았다. ‘미스 프랑스’ 이후 5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김성령은 “늘 연극이 운명처럼 다가온다는 표현을 쓴다. 좋은 작품과 역할을 주셔서 망설임 없이 시작을 하게 됐다”며 “대사량이 많고 힘을 쓰는 액션신들이 힘이 들기도 했지만 잘 마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전했다.

안재욱에게는 22년만의 연극 무대다. 올해 초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후 5개월 만에 다시 관객들을 만난다. 그는 “많이 죄송스럽고 부끄럽다. 연기를 그만둬야 하나 생각도 했었지만 제가 연기 외에는 달리 할 줄 아는 재주가 없어 성실한 모습으로 보답해 드리고 싶었다”며 “연습실에서 내내 살 정도로 재학 시절보다 더 많은 연습을 했다”고 했다.


연극 '미저리' 무대 위 모습. 그룹에이트 제공


감각적인 무대 연출과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 극의 서스펜스에 힘을 보탠다. 극은 1987년 콜로라도 실버크릭 지역에 있는 애니의 집에서 모든 사건이 벌어진다. 소설과 영화 속에서 표현된 애니의 집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한정적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회전무대를 사용했다.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음산하고 섬뜩한 음악도 100분 내내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사건 전개 속도에 발맞춘 음악의 활용이 몰입을 돕는다.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애니의 테마곡도 추가됐는데, 어렸을 적 부모의 학대로 트라우마가 생긴 애니 윌크스의 마음을 표현한 ‘Can You Cry For Me?(나를 위해 울어줄 수 있나요?)’라는 곡이다. 서정적인 선율이 돋보인다.


연극 '미저리' 무대 위 모습. 그룹에이트 제공


황 연출은 “앵콜 공연을 준비하면서 진보한 공연을 보여드리려 노력했다. 서스펜스를 강화하기 위해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템포를 조절하기 위해 신들도 과감히 줄였다”며 “서스펜스의 어원이 ‘갇혀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관객이 공연이 끝날 때까지 갇혀 있다가 상쾌한 기분으로 집에 가실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최근 연극계 트렌드인 젠더프리 캐스팅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보안관 버스터 역에 44년 경력의 베테랑 배우 고인배와 함께 MBC 간판 아나운서 손정은이 더블 캐스팅됐다. 김상중은 “드라마 ‘더 뱅커’(MBC)에서 인연을 맺었는데, 정은씨에 대한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감독님께 젠더프리 캐스팅을 여쭤봤고 흔쾌히 받아들여주셔서 성사된 것”이라며 캐스팅 일화를 전했다. 황 연출가는 “초연에서 변화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손정은씨가 버스터 역을 맡게 됐다. 무대에서 보면 더 새로운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공연은 9월 15일까지.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