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26)은 어김없이 빨간색 긴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하루 전만 해도 검은색 반바지를 입고 라운딩을 펼쳤다. 미국 오하이오주 실베이니아 하일랜드 메도스 골프클럽은 한국과 비슷한 위도에 있어 초여름 기온이 30도를 웃돌고 습도가 70% 안팎으로 나타나는 곳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에서 내리쬐는 볕은 홀컵에 세운 깃발의 그림자를 선명하게 드리울 만큼 강렬했다.
더운 날씨였지만, 김세영은 최종 라운드마다 ‘의식’을 치르듯 입었던 빨간색 긴 바지를 다시 입었다. 2위 렉시 톰슨(24·미국)과는 1타차 선두.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고, 챔피언조에서 동반 라운딩을 펼친 톰슨을 향한 안방 갤러리들의 일방적인 응원도 이겨내야 했다. 하지만 김세영은 주눅이 들지 않았다.
1번 홀(파4)에서 톰슨이 보기를 쳤다. 김세영은 파 세이브에 성공한 뒤 2번 홀(파3)에서 버디를 낚았다. 불과 두 홀 만에 톰슨을 3타차로 따돌렸다. 기세를 잡자 독주를 시작했다. 7번부터 11번 홀까지 5개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고 톰슨을 6타 차이까지 따돌렸다. 이 틈에 톰슨은 4번 홀(파4)에서 보기를 적어냈다.
김세영이 16번 홀(파4)에서 보기로 잠시 주춤하자 톰슨은 17번 홀에서 버디, 18번 홀(이상 파5)에서 이글을 잡고 3타를 줄였다. 하지만 김세영 쪽으로 일찌감치 기울어진 승부는 뒤집히지 않았다. 그만큼 김세영의 최종 라운드 경기력은 압도적이었다.
김세영은 15일(한국시간) 하일랜드 메도스 골프클럽(파71·6550야드)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라톤 클래식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보기 1개를 묶어 6언더파 65타를 적어냈다. 최종 합계 22언더파 262타로 2위 톰슨을 2타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 상금 26만2500달러(약 3억1000만원)를 손에 넣었다. 지난 5월 메디힐 챔피언십에 이어 올 시즌 2승을 수확했고 투어 통산 9승을 쌓았다.
김세영은 그동안 최종 라운드에서 긴 빨간색 바지를 입고 시종일관 선두를 유지하거나 선두를 추월한 뒤집기로 우승한 적이 많았다. 바지의 색상만큼 인상적인 최종 라운드의 경기력이 그에게 ‘빨간바지의 마법사’라는 별명을 안겼다.
이제 빨간바지의 마법은 오는 26일 프랑스에서 개막하는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을 향하고 있다. 김세영은 한국 선수의 LPGA 다승에서 박세리(25승) 박인비(19승) 신지애(11승)에 이어 공동 4위에 오를 만큼 많은 승수를 쌓았지만 정작 메이저대회를 정복하지 못했다. 김세영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