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모렐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대행이 재개될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북핵 동결’이 현 시점에서 나아갈 수 있는 논리적 수순이며, 이를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 대가로 북측에는 개성공단 재가동 등 제한적 제재완화를 제시해 미국과의 장기 핵협상에서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이익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펼쳤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 시절 CIA 부국장 및 두 차례의 국장대행을 지낸 모렐은 14일(현지시간) 미 워싱턴포스트(WP)에 실은 기고문을 통해 북한 핵·장거리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이 북한 비핵화라는 종착지로 가기 위한 올바른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핵 동결 협상을 시작으로 북한과 신뢰를 쌓는다면 자연스럽게 후속 협상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를 통해 북의 전체 무기 체계의 영구적 제한과 감축이라는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며 “단 한 번, 단 하나의 합의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모렐 전 대행은 또 “핵 동결이나 기타 합의 없이 시간만 보내는 사이 북한은 자신들이 가진 핵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 비축량만 더 늘릴 것이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북측에 더 큰 협상 지렛대만 주는 꼴이다. 결국 미국은 협상을 위해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이 경우 두말할 나위 없이 더 큰 안보 위협으로 미국에 닥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렐 전 대행은 핵동결에 대한 보상으로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 등 제한적 제재완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북한에 주어지는 보상은 그들이 동결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바로 원상복구할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은 모든 핵물질과 장거리미사일 생산 시설의 규모와 위치를 신고해야 하고 국제사찰단의 시설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며 “이러한 전제가 없다면 핵 동결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동결이 비핵화의 최종상태가 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북·미 실무협상 재개에 앞서 북핵 동결론이 트럼프 행정부의 진짜 의중이냐 아니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동결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비핵화 협상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고, 이는 협상 목표를 핵 폐기에서 핵 동결로 낮춘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모렐 전 대행도 북핵 동결론 관련 트럼프 행정부 내 다양한 논의를 거론하며, 몇몇 행정부 관계자들은 내부에서 북핵 동결론을 논의하고 있음을 일부 긍정했지만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를 단호하게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 9일 브리핑에서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한 제거가 최종 목표이며 동결은 비핵화 과정의 시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