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 ‘탈 중국’ 가속…크록스, 룸바, 고프로 속속 동남아로

입력 2019-07-15 11:38 수정 2019-07-15 12:03
AP뉴시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미국 기업들이 고율 관세를 견디지 못하고 해외로 공장을 옮기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이 지난 5월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적용한 이후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15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신발 제조업체 크록스, 아이스박스를 만드는 예티 쿨러, 진공청소기 룸바, 고프로 카메라 등 미국 회사들이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해 중국에 있는 생산라인을 동남아로 옮기고 있다.

미국 가구 제조업체인 러브색은 현재 자사 제품의 60% 정도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올해초 75%에서 크게 줄어든 수준이다. 숀 넬슨 러브색 대표는 “우리는 제품 생산을 매우 공격적으로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다”며 “내년 말까지 중국에서 생산을 중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애플도 일부 제품의 최종 조립을 중국 외 지역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국 이외의 지역으로 생산라인을 이전하는 회사들은 새로 시설을 설치하고 운송 방식을 변경하는데 투자된 시간과 비용 때문에 다시 중국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넬슨 대표는 “회사가 한 번 중국을 떠나면 다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티 쿨러 측도 소프트 아이스박스 생산량 대부분을 올해 말까지 중국 밖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이로봇사는 올해 말레이시아에서 룸바 생산 라인을 새로 가동하기로 했다. 크록스는 중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제품 규모가 지난해 6월 30%였으나 내년 말까지 이를 10% 이하로 줄일 계획이다.

디젤 엔진 제조업체인 커민스는 일부 제품을 인도 등 다른 나라에서 생산함으로써 5000만 달러(590억 원)의 관세를 절감했다고 밝혔다. 올들어 5월까지 미국의 중국산 제품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12% 감소했는데, 이는 10년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로 기록됐다.

중국을 이탈한 기업들은 주로 베트남, 인도, 대만, 말레이시아 등 생산 비용이 낮은 아시아 국가로 이전하고 있다. 특히 올해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물품 규모는 648억 달러로 지난해보다 3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기대한 것과 달리 중국을 떠난 미국 기업들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는 증거는 없다고 WSJ는 지적했다. .

중국에서 공기주입식 카약, 카누, 낚싯배 등을 만드는 시이글보츠의 존 호지 공동설립자는 “우리가 미국에 공장을 짓는다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라며 “중국에서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2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크라운 크래프츠사는 관세 비용을 감안해 5~6개국의 제조원가를 분석한 결과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고 결론짓고 중국에서 아기 담요를 계속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