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붕괴 잔해에 갇혀보니 절망만 가득했다

입력 2019-07-14 14:02
취재진이 11일 충남 공주 중앙소방학교 내 화학물질훈련장에서 화재 훈련 시연을 지켜보고 있다. 소방청 제공

화재 붕괴 잔해 속 생존은 기적이었다. 11일 충남 공주 중앙소방학교 농연(짙은 연기) 훈련장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이어졌다. 희뿌연 연기로 가득 찬 이 방의 주인공은 쇠창살로 만든 미로. 잔해에 갇힌 조난자·구조대의 처지를 재현해놓은 공간이다. 공기정화통과 소방복 등 18kg이 넘는 ‘완전군장’을 하고선 호기롭게 창살 안으로 기어들어 갔지만 공포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숨이 가빠지자 공기 마스크에선 중환자실의 산소호흡기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소방청은 이달 천안에서 공주로 이전한 중앙소방학교를 이날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새 소방학교는 소방청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2238억원을 들여 지은 소방 교육의 산실이다. 실제 화재 훈련장부터 가상현실(VR)·드론 훈련장까지 최신 교육시설을 갖췄다.

소방학교는 국내 대형재난을 총망라한 ‘재난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고양 저유소 화재와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서초구 건물붕괴, 전국 곳곳의 고시원 화재처럼 최근 줄이은 재난현장의 표본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소방청 관계자는 “마치 최근의 재난 현장을 참고해 훈련장을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년 전부터 설립이 예정된 곳들”이라고 설명했다. 훈련장으로 꾸릴 만큼 ‘초 위험 공간’의 재난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오후 12시쯤 찾은 소방학교는 깊은 산골에 숨어 있었다. 언뜻 보면 대학 캠퍼스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전국에서 안 터지는 곳이 없다는 4G(LTE)가 드문드문 끊기고, 주변에는 편의점과 맥줏집 하나 없다. 취재진을 맞은 소방청 관계자들은 “잊지 못할 훈련이 준비돼 있으니 밥을 든든히 먹으라”고 겁을 줬다. 소방 간부후보생도 1주일에 걸쳐 나눠 받는 훈련이었다.
중앙소방학교 관계자가 11일 충남 공주 붕괴사고대응 훈련장에서 소방 드론을 시연하고 있다. 소방청 제공

비교적 쉬운 실내 참관훈련부터 시작했다. 간부후보생들이 일선 소방관의 현장 보고부터 소방청장의 지휘까지 모의 훈련했다. 오락실 게임을 하듯 화면을 보고 조종기를 움직여 화재현장을 관찰하고 불을 끈다. 소규모 재난은 군의 소대장 격인 119구조대장이 사태를 수습하지만, 재난 규모가 커지면 소방서장 소방본부장 소방청장이 순서대로 움직인다. 지난 4월 발생한 강원도 고성화재가 소방청장이 긴급구조통제단을 꾸린 사례다.

땀 냄새가 짙게 밴 훈련복을 입고나니 훈련 난이도가 달라졌다. 몸으로 체험하는 첫 훈련은 실내종합훈련장의 11m 건물 외벽 레펠(줄을 이용한 하강) 훈련이었다. 두 가닥 줄에 의존해 4층 건물 옥상에서 땅으로 엉거주춤 내려올 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숙달된 훈련생들은 외벽 옆 10m 헬리콥터 훈련 장비에 올라 레펠 훈련을 한다.
레펠 훈련에 사용되는 모형 헬기. 소방청 제공.

레펠 훈련에 사용되는 모형 헬기 안에서 아래를 쳐다본 모습. 오주환 기자

농연훈련장으로 이동하자 설상가상이었다. 총 18kg짜리 개인 소방복이 바닥에 깔려있었다. “훈련장 안에는 실제 재난 현장처럼 사방에 스트레스를 주는 것들로 가득하다”는 교관의 말을 듣자 곧바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쇠창살 미로 첫 관문에서부터 들쳐 멘 공기압축통이 장애물에 걸려 한참을 옴짝달싹 못 했다. 장애물을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썼지만 공기통에서 공기가 세차게 새어 나올 뿐이었다. 이 사고로 40분을 버텨야 하는 공기통이 10분도 버티지 못했다.

소방복을 입은 취재진이 11일 충남 공주 중앙소방학교에서천장에 굴러다니는 불을 끄는 모습. 소방청 제공

가까스로 농연훈련장을 빠져나왔지만 완전군장은 벗을 수 없었다. 곧바로 복합건물화재진압 훈련장으로 이동해 ‘천장에 굴러다니는 불’을 소방호스를 사용해 꺼야 했다.

밖에 있는 화학물질훈련장에서는 ‘불의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대형 가스통에서 새어 나온 가스를 집어삼킨 불꽃은 형태가 선명했고 열기가 매서웠다. 대형 원통에서 위로 뿜어져 나오는 불길, 끝이 보이지 않는 공동구 내부 화재는 잇따른 대형 재난의 모습이 연상됐다.

이날 진행한 훈련은 소방 간부후보생들이 1주일에 걸쳐 받는 훈련의 ‘맛보기’ 격이었다. 마지막 훈련까지 마치자 땀 냄새 밴 훈련복에 또다시 땀이 흥건히 젖었다. 소방청 관계자들은 “오늘 폭염이 아닌 게 다행인 줄 알라”며 농담을 건넸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