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사건의 피고인인 박모(50)씨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씨는 10년 전 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를 살해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됐다가 이날 자유의 몸이 됐다.
제주지법 형사2부(정봉기 부장판사)는 11일 강간살인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박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정황상 증거로는 피고인의 혐의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또 증거물로 사용된 피고인의 청바지에 대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절차가 위법하다고 봤다.
박씨는 2009년 2월 1일 새벽 자신이 몰던 택시에 탑승한 보육교사 A씨(당시 27·여)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목을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애월읍 농로 배수로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 사건은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며 장기미제로 남아있다가 2016년 2월 경찰이 장기미제 전담팀을 꾸리면서 수사를 재개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박씨의 차량 운전석과 좌석, 트렁크 등과 옷에서 A씨가 당시 착용한 옷과 유사한 실오라기를 다량 발견해 미세증거 증폭 기술로 증거를 확보했다.
경찰은 확보한 증거물을 바탕으로 지난해 5월 18일 박씨를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해당 증거가 박씨의 범행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검찰은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보강수사를 진행했다. 이후 A씨의 피부와 소지품에서도 박씨가 당시 착용한 것과 유사한 셔츠 실오라기를 발견했다. 또 당시 택시 이동 경로가 찍힌 CCTV 증거를 토대로 사건 당일 박씨가 차량에서 A씨와 신체적 접촉을 했다고 판단해 지난해 12월 박씨를 구속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박씨의 청바지를 압수수색했던 절차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피고인이 별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사정을 알면서도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수색해 얻은 청바지가 형사소송법 308조에서 말하는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청바지에서 검출한 미세섬유 증거 및 그 분석결과는 위법수집증거인 청바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거나 그 변형물 또는 청바지를 기초로 한 2차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택시에 탑승했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고 봤다. 피해자가 입었던 무스탕 제조과정에서 동시에 여러 종류의 동물털이 사용된 점이 고려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등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으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혐의가) 입증됐다고 볼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이날 박씨는 재판을 받는 내내 눈물을 흘리며 재판장의 최종 선고를 기다렸다. 이후 무죄 선고가 내려지자 박씨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큰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3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박씨에게 무기징역과 10년간의 신상정보 공개를 재판부에 요청했었다. 그러나 이날 법정에서 무죄가 선고됨에 따라 그간 제주교도소에 구금돼있었던 박씨는 즉시 석방됐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