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향한 비난을 축소하기 위해 선택적 기억상실증 환자 행세를 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한때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자신을 등지고서 비난을 퍼부으면 곧장 “모르는 사람”이라고 발뺌한다는 것이다.
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성패트릭의 날 기념 오찬 행사에서 킴 대럭 미국 주재 영국대사와 마주앉았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잘 아는 사람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럭 대사에게 브렉시트 관련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자신이 강경한 정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자화자찬을 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럭 대사와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과 런던에서 여러 차례 만나 소통할 기회를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보좌관들 중 상당수가 영국대사관에서 열린 호화스런 파티에 참석하고 백악관에서 대럭 대사와 면담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대럭 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전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폄하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180도 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나는 대럭 대사를 잘 모르지만 그가 거만한 바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적었다. 전문 유출 사건 이후 아예 모르는 사람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관계가 끊어진 사람을 두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일축한 건 처음이 아니다. 매튜 휘태커 전 법무장관 대행, 자신의 개인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등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취급을 받았다. 이런 일이 워낙 반복되는 탓에 일부 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버릇을 두고 농담을 나누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사람을 기억하는 데 탁월한 소질이 있다고 귀띔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두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억력의 소유자”라고 자찬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비판자를 모르는 척하는 이유는 그들 증언의 신빙성을 낮추고 자신이 부당한 비난을 받고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적이 거의 없는 사람도 단번에 각별한 사이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화려한 칭찬을 해주면 된다. 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자신을 높이 평가한 수십여 종의 책과 그 저자들을 두고 자랑을 늘어놓고는 한다. 하지만 측근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읽은 책은 거의 없다고 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