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30대 기업 총수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해 중장기적인 지원책 마련을 정부에 요청했다. 또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소재 강국인 독일, 러시아와의 협력 확대를 제안했다.
기업인들은 정부의 대응안에 대해 특별히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안이 중대한 만큼 최대한 민·관이 협력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부가 해법으로 제시한 부품 소재 국산화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는 있었다. 한 전자업계 회장은 “장비보다 소재, 부품 국산화율이 낮다. 우리가 최고급이나 하이엔드 제품을 생산, 납품해야 하므로 소재 부품도 높은 품질기준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긴 호흡을 가진 정부의 지원과 기업 노력이 있어야겠다”고 요청했다. 글로벌 공급망을 국내 위주로 돌리는 과정에서 연구개발(R&D)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참석자들은 수입선 등 조달망 다각화도 강조했다. 한 참석자는 특정 국가의 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특히 화학 분야는 러시아, 독일도 강점이 있으니 이들과 협력 확대를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자본이 너무 안정적인 분야에만 몰리고 부품·소재 등 상대적으로 투자 위험이 큰 분야로는 가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와 관련 금융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달라는 요청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단기간 내 국내 부품·소재 원천기술 확보를 하자면 전략부품 산업의 M&A(인수합병)가 적극 검토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R&D 투자나 신규화학물질 생산에 대한 환경규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각자의 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다짐도 이어졌다. 한 참석자는 “우리 회사가 영업과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분야는 일본이 상당한 독점력을 갖고 있는 분야다. 다만 우리는 자체 기술 개발에 성공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향후 국내 소재와 관련한 생태계를 조성해서 그 분야의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했다.
다른 참석자는 “1년여 전 소재 분야에 있어 세계최초로 국내 양산체제를 갖췄다. 상당히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였다”며 “계속 노력하면 우리도 소재 쪽에서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는 기술과 공장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회의에서 대일(對日) 수출 규제를 포함한 맞대응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는 18일로 예상되는 일본의 2차 경제보복 조치 관련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민·관 대응 상시체제 구축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은 없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는 기업 스스로 부품 소재 다각화 방안을 짜면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문 대통령이 기업 총수를 청와대로 초청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 간담회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대응을 위해 급히 준비된 만큼 호프미팅과 경내 산책 일정이 포함됐던 지난 두 차례의 간담회와는 다른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각 총수들의 발언 순서와 시간이 미리 공지됐고 자리도 국무회의 대형처럼 촘촘하게 배치됐다.
당초 정오까지로 계획됐던 간담회는 예상보다 30분 초과된 오후 12시30분에 종료됐다. 문 대통령은 직접 “점심시간을 넘겨도 상관 없으니 발언하고 싶은 기업인들이 모두 발언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본과 직접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인들을 배려해 발언 내용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간담회에 참석한 34명이 모두 발언을 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