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아동성범죄 봐주기’ 의혹 노동장관 “실업률 낮아” 옹호

입력 2019-07-10 17:15 수정 2019-07-10 17:2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미성년자 성범죄 ‘봐주기’ 논란에 휩싸인 알렉산더 어코스타 노동장관을 옹호하며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과의 회담에 앞서 “어코스타 장관은 2년 반 동안 탁월한 노동장관이었다. 환상적인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어코스타 장관은 미성년자 성범죄 혐의로 기소된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11년 전 성범죄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뒤를 봐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가 당시 수사팀 지휘 책임을 갖는 플로리다 남부지검장으로서 엡스타인의 감형 협상에 관여했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우리 경제는 매우 좋다. 실업률은 기록적으로 낮다”고 강조했다. 경제 호황과 낮은 실업률을 근거로 어코스타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그는 “우리는 그 사건을 매우 주의 깊게 조사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엡스타인 감형은) 그가 혼자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인 엡스타인은 지난 2002~2005년 뉴욕과 플로리다에서 20여명의 미성년자를 상대로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지난 2008년에도 최소 36명의 미성년자들에게 성행위를 강요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당시 엡스타인은 종신형 위기에 처했으나 검사팀과의 감형 협상 끝에 고작 13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과 엡스타인이 친분이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오래전에 그와 사이가 틀어졌으며 15년 동안 그와 말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엡스타인에 대해 “멋진 녀석이다. 같이 어울리면 정말 재미있다”고 표현한 일이 알려지며 친분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엡스타인의 뒤에 미국 사회 최고 권력층과 검찰이 있었고 이를 통해 그가 법망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활보할 수 있었다는 주장도 거듭 제기되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특권층의 비호 속에서 성장한 엡스타인의 삶을 조명했다. 엡스타인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수십명의 여성들은 그의 성범죄를 입증하기 위해 경찰과 검찰, 법원을 찾아다녔지만 그는 그 순간에도 금융업계, 정계, 법조계, 의료계, 연예계 등 분야를 넘나들며 유력 인사들의 연락처를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데 전념했다. 엡스타인은 미국 최고 대학과 연구기관들의 수장들을 만났고, 대통령 및 왕자들과 함께 여행했으며, 유력 기업인들의 돈을 관리했다. 그는 평소 자신이 굴릴 수 있는 돈이 최소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에 달한다고 자부하기도 했다.

미 민주당은 이번 사건을 고리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파상공세를 펼쳤다.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어코스타 장관의 즉각 퇴진을 촉구했다.

펠로시 의장은 트위터를 통해 “어코스타 장관은 물러나야 한다”며 “그가 관여한 비양심적인 감형 협상은 엡스타인 사건 피해자들이 정의를 밝히는 일을 막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도 어코스타 장관을 내각 인사로 지명할 때 이미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슈머 원내대표는 “어코스타 장관이 사퇴를 거부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해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화당은 미치 매코널 하원 원내대표가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발언하는 등 거리를 두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