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조사 결과 고순도 불화수소 반출 없다 밝혀
일본 측 근거 없으면 오히려 유엔 안보리 결의 무시 반박
WTO 상품무역이사회 통해 문제제기…국제사회 문제로 부각
정부가 일본을 겨냥해 ‘전방위 반격’에 나섰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북한 관련 발언을 강하게 반박했다.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내린 ‘고순도 불화수소(에칭 가스)’가 북한에 반출됐다는 증거를 대라고 받아쳤다. 국내 기업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결과 유출 증거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일본 정부에서 관련 증거를 가지고 있는데도 유엔에 보고하지 않았다면, 되레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무시했다고 공격했다.
또한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맞대응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정부는 WTO 상품무역이사회에 일본 수출 제한 조치를 긴급 안건으로 상정했다.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의 문제로 부각시킨 것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은 근거 없는 주장을 즉시 중단하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전날 BS후지TV의 여야 당대표 토론회에 참석해 꺼낸 발언을 지목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수출규제 소재 3가지 가운데 반도체 핵심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의 반출을 제한한 이유로 ‘북한’을 들었다. 북한에 해당 소재가 유출됐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이 대북 제재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고 했다. 측근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 한국으로 간 고순도 불화수소의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행선지를 북한으로 단정한 것이다. 사실이라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 된다.
정부는 ‘사실과 다르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성 장관은 “관련 기업을 대상으로 불화수소 수입·가공·공급·수출 흐름 전반을 긴급 점검했다.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못을 박았다. 이어 “의혹 제기는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통제 제도를 높이 신뢰하는 국제사회 평가와는 완전히 상반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국가 간 생화학무기 물자·기술 이동을 제한한 호주그룹에 1996년 가입했다.
성 장관은 일본을 강하게 꾸짖기도 했다. 그는 “일본이 우리가 모르는 자료를 갖고 있다면 유엔 안보리 결의 당사국으로서 (국제사회와) 공유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대응했다. 외교 채널을 통한 항의에서 한 발 더 나간 것이다. 외교부는 지난 8일 주한 일본대사관의 참사관급 관계자를 불러 항의 뜻을 전했다. 아베 총리의 발언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지적했다.
동시에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국제사회 공조’ ‘외교적 압박’에 시동을 걸었다. 정부는 8~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상품무역이사회에 일본의 수출 제한 문제를 안건으로 올렸다. WTO의 3대 특별이사회 중 하나인 상품무역이사회는 회원국 간 원활한 무역을 관장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9일 기자들과 만나 “주제네바 대표부가 이번 수출규제 조치를 회의 안건으로 제안했고, WTO 상품무역이사회는 기타 안건으로 긴급 상정해 의제로 채택했다”며 “한국시간으로 10일 새벽에 우리 정부는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설명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WTO 제소를 앞두고 국제기구와 관련 국가에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알리고 여론을 환기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일 특사 파견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일 특사와 관련해서 아직까지 논의된 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세종=신준섭 기자, 전성필 임성수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