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9일 민간단체 국가미래연구원을 통해 공개한 기고문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일본계 금융기관이 해외지점 등에서도 한국에 대한 여신을 제한할 수 있는 충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이 인용한 통계를 보면 일본계 금융기관이 한국 민간기업과 공기업 등에게 제공한 전체 여신 규모는 지난해 9월 기준 586억 달러(69조1773조원)다. 일본 현지에서 영업 중인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홍콩 뉴욕 등 해외에 진출한 일본 금융기관으로부터 조달한 자금을 포함한다.
여신은 전체의 약 76%인 445억 달러(52조5768억원)가 민간기업 등에 몰려 있다. 민간은행(68억 달러)을 포함하면 88%에 달한다. 국내 공적기관이 일본계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도 74억 달러(8조7431억원)로 적은 규모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있는 일본계 금융기관보다 해외에 있는 일본계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돈이 더 많다는 점에 주목한다. 국내 일본계 금융기관이 한국 측에 제공한 여신은 248억 달러(29조2764억원), 한국 밖에 있는 일본계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여신은 338억 달러(39조9009억원)다. 약 58%의 돈줄을 해외에 있는 일본계 금융기관이 쥐고 있는 것이다. 한일 관계가 더 나빠지면 국내보다는 해외에 있는 일본계 금융기관이 먼저 여신 제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현 상황이 장기화하면 한국이 일본계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일본 측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일본 신용평가사가 한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면 돈줄이 막힐 수밖에 없다.
이 위원은 “한일 간 외교 현안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일본정부의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는 무역 이외에 금융, 기술 및 과학 교류, 비자, 젊은 층의 일본 취업 등의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위험성도 있다”며 “일본은 세계 최대의 순채권국이며 그 영향력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