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해 4월 야심 차게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이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난관에 봉착했다. 삼성전자가 준비 중인 차세대 초미세 공정에 일본 기업의 포토레지스트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9일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 및 영향’ 보고서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로 삼성전자 비메모리 반도체 강화 방안의 핵심축인 파운드리 사업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출 규제 품목 중 수급 문제가 생기면 가장 타격이 큰 건 포토레지스트로 꼽힌다. 일본 업체 점유율이 높아 대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은 일본 업체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국내 업체도 있어서 대체가 가능한 편이다.
삼성전자는 7나노 극자외선(EUV) 공정을 앞세워 최근 글로벌 주요 팹리스 업체들의 반도체를 수주했다. IBM, 엔비디아, 퀄컴 등이 삼성전자를 찾았다. 파운드리 업계 1위 대만 TSMC가 먼저 7나노 공정을 도입했지만, 삼성전자의 7나노 EUV 공정이 더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승부수를 던지면서 TSMC와 파운드리 1위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본이 수출 규제에 나서면서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1위를 하겠다는 삼성전자의 목표 달성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EUV 공정에 필요한 포토레지스트를 일본 업체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EUV 공정은 자외선을 쏴 반도체에 회로를 그리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포토레지스트가 필요하다. 포토레지스트 수급 불안으로 삼성전자가 계약한 물량을 제대로 납품하지 못하면 신뢰도가 크게 떨어져 향후 수주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메모리 반도체 공정에도 EUV를 도입할 계획이어서 포토리지스트 수급 문제는 반도체 경쟁력 전반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JSR, TOK, 신에츠화학, 스미토모 등이 전 세계 시장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체할 업체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로이터통신은 일본 JSR이 벨기에 공장을 통해 한국 업체에 수출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다른 기업들도 한국과 합작사를 통하는 등의 방식으로 공급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우회 수출을 통해 물량을 어느 정도나 확보할 수 있는지 미지수이고, 일본 정부가 우회 수출까지 규제를 강화할 여지도 있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다.
일본 ANN 방송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1일까지 일본에 머무르며 반도체 소재 수급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일본 대형 은행, 반도체 업체 관계자들과 만나 반도체 소재 공급이 막힐 경우에 대비한 협의를 할 것으로 보인다. 단 규제 대상이 되는 재료를 만드는 기업과는 직접 만나서 협의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이 11일까지 일본에 체류하게 되면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기업인 간담회에는 참석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귀국 일정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