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논란이 된 킴 대럭 영국대사의 교체를 노골적으로 영국에 요구했다. 그러나 영국은 “대사의 임무는 주재국에 대한 솔직한 보고를 하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럭 대사를 만찬에 초청했다가 취소 통보를 하는 ‘뒤끝’을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트위터 글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대럭 대사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어 “나는 그를 모른다”면서 “그는 미국 내에서 사랑받지 못했고, 좋은 평가를 받지도 못했다”고 비수를 꽂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까지 뻗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영국과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를 다뤄온 방식에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면서 “메이 총리와 대표자들은 엉망진창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나는 메이 총리에게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에 대해 말했지만, 메이 총리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위대한 영국을 위해 좋은 소식은 그들이 곧 새 총리를 뽑는다는 것”이라고 총리직 사퇴를 결정한 메이 총리를 비꼬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메이 총리는 비밀전문 유출 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지난 5일 전화통화를 갖고 이란과 북한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하지만 유출 사건 이후 화가 치솟은 트럼프 대통령이 메이 총리에게 악담을 퍼부은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럭 대사를 인정하지 않는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미국을 방문한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 환영 만찬 행사를 이날 재무부에서 주최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참석했다. 대럭 대사는 이 만찬 행사에 초대를 받았으나 갑작스럽게 취소 통보를 받았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미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럭 대사를 워싱턴의 투명인간 취급을 하며 보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영국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영국 총리실 대변인은 “총리실은 백악관과 접촉을 갖고 있다”면서 “비밀전문 유출은 전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총리실 대변인은 이어 “메이 총리는 대럭 대사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면서 “대사들은 임무는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의 의견을 보고하는 것”이라고 대럭 대사를 옹호했다. 총리실 대변인 그러나 “메이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달랬다.
영국 정부는 경찰에 이번 비밀전문 유출 사건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은 외부 세력의 해킹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해킹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했지만 우리는 매우 꼼꼼하게 유출 사건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대럭 대사가 “트럼프 대통령은 불안정하며 무능력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력이 불명예스럽게 끝날 수 있다”고 영국에 보낸 비밀전문 내용을 영국의 일간 데일리 메일이 지난 6일 보도하면서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 브렉시트 반대론자로 알려진 대럭 대사를 워싱턴에서 축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국 정부의 인사가 언론에 유출한 것이라는 음모론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