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장벽’ 허무는 오픈뱅킹, 혁신일까 치킨게임일까… 시행 3개월 앞으로

입력 2019-07-09 08:01
은행권 오픈뱅킹 사업 활발, 일각에선 ‘출혈 경쟁’ 우려
전문가 “가격 경쟁보다는 상품 차별화로 승부해야”




오는 10월 예정된 오픈뱅킹 시범 시행을 앞두고 은행권이 분주하다. 홈페이지에 ‘오픈 API(Open Application Program Interface)’ 목록을 공개하는가 하면, 핀테크 업체의 API 개발자들을 초청해 관련 정책을 홍보하기도 한다.

오픈뱅킹 체제에서 은행들은 고객 정보를 공유한다. A은행에서 자신의 고객이 B은행에 개설한 계좌 안에 얼마나 있는지, 무슨 상품에 가입했는지 등의 재무정보를 조회할 수 있다. 고객은 은행과 관계없이 하나의 모바일뱅킹 앱(애플리케이션)으로 계좌를 조회하고 금융 자산을 관리 가능하다. 이때 사용되는 도구가 오픈 API다. 기업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다른 기업이 응용해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혁신 경쟁이 자칫 ‘치킨게임’으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고객이 다른 은행의 어떤 상품에 가입했는지 확인하고, 고객 특성에 맞춰 자신들의 상품에 들도록 유도할 수 있어서다. 극단적으로는 대출금리 인하, 수수료 인하 등의 가격 경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금융 당국이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KB국민은행은 2017년 8월부터 KB금융지주 홈페이지에 오픈 API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8일 기준으로 KB국민은행에서 다루는 오픈 API 종류는 36개다. 대출계좌 조회, 대출잔액 조회, 대출금 상환 조회부터 부동산 청약목록 조회까지 다양하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27일 서울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오픈 API 개발자 밋업데이(Meet-Up Day)’ 행사를 가졌다. 은행과 핀테크 기업의 API 담당자들이 정보를 나누는 자리였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 모바일뱅킹 앱 ‘위비뱅크’에 오픈뱅킹 메뉴를 추가하기도 했다. NH농협은행은 2015년 은행권 최초로 오픈 API를 핀테크 기업에 제공하는 ‘오픈 플랫폼’ 개념을 도입했다. 지난해에만 간편결제, 비대면 본인인증 등의 API가 380만건에 이른다. 거래금액은 1조8000억원에 달한다.

인터넷은행도 오픈 API에 열을 올리고 있다. 뱅크샐러드(레이니스트)는 오픈 API를 활용해 각 금융회사에 흩어져 있는 고객 자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비스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지난 5월 기준 뱅크샐러드에 연동된 금융상품 관리금액만 130조원이다. 케이뱅크는 지난달 21일 네이버페이와 손잡고 ‘케네통장’을 출시했다. 모바일뱅킹 앱을 다운받을 필요 없이 계좌개설이 가능한 통장이다.

그러나 과열경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고객의 모든 은행 계좌나 자산 정보가 공유되기 때문에 ‘고객 빼가기’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 카드업계의 ‘혜자카드’처럼 단순히 저금리 대출, 수수료 인하, 경품 제공 같은 ‘퍼주기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차별화된 상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제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상품도 다른 은행 플랫폼에서 팔 수 있게 됐다”며 “다양한 업체와 협업해 데이터를 수집한 뒤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오픈뱅킹은 고객들의 금융상품 정보 접근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필요하다”면서 “은행의 출혈경쟁에 따른 건전성 악화를 막고, 개인정보 보안도 지킬 수 있도록 금융 당국 감시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경쟁이 격화되긴 하겠지만, 은행이 건전성에 민감한 집단인 만큼 출혈 경쟁으로 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개인정보 보안 문제는 관련 실무자, 전문가들과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