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총선에서 중도우파 신민주당(신민당)이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에 완승을 거두고 4년 반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AP통신·AFP 통신 등은 7일(현지시간) 개표 결과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51) 대표가 이끄는 신민당이 40% 가까이를 득표해 시리자를 압도하고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신민당의 득표율은 최근 10년간 가장 높은 수치다.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득표율 1위 정당에 비례대표 50석을 몰아주는 의회 제도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의 특성상 신민당은 전체 의석의 절반을 훌쩍 넘는 158석을 차지해 자력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144석이었던 집권 시리자는 86석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그쳐 제2당으로 전락했다.
미초타키스 대표는 승리가 확정된 후 TV연설을 통해 “고통의 주기는 오늘로 끝났다. 자랑스럽게 재도약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지자들을 향해서도 “우리 국민들이 번영하는 것을 보고 싶다. (일자리가 없어) 그리스를 떠났던 우리 자녀들이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미초타키스 대표는 감세와 일자리 창출, 공기업 민영화, 강력한 성장 등 시장친화적 공약으로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그리스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보수파의 거두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 전 총리의 아들이다. 지난 19990~1993년 총리를 지낸 아버지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 총리 자리에 오르면서 2대에 걸친 부자 총리가 탄생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44) 현 총리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그의 ‘금수저’ 배경을 겨냥해 “황태자를 그렇게 서둘러 왕좌에 올려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시리자는 지난해 8년에 걸친 구제금융 체제를 졸업하고 그리스 경제를 성장세로 돌렸지만 끝내 긴축 정책에 지친 유권자들의 맘을 되돌리는 데 실패했다. 지난 2015년 1월 총선에서 국제채권단이 요구하는 긴축을 종식하겠다는 공약으로 최연소 총리 자리에 오른 치프리스 총리도 권좌에서 물러나게 됐다.
긴축 거부를 앞세웠던 치프라스 총리는 부임 6개월 후 국제채권단 협상안 수용 여부를 두고 실시된 국민투표가 부결되며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되자 파국을 막고자 채권단 측 요구보다 더 혹독한 긴축 요구를 담은 3차 구제 금융안을 받아들이며 국민적 반발을 샀다. 세달 후 비난 여론이 들끓자 ‘조기 총선 소집’이라는 정면 돌파 카드를 꺼내들며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으나, 결국 정권 초 자신의 공약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 유권자들의 심판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구제금융의 짙은 그늘 속에서 만성 실업에 시달리는 청년 세대가 느끼는 배신감이 컸다. 신민당 등 기성 정당에 대한 비토의 의미로 4년 반 전 시리자를 대거 지지했던 청년층이 이번 선거에서는 성장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신민당에 표를 몰아준 것으로 보인다.
지난 총선에서 기성정당 심판 분위기에 편승해 원내 제3당으로 약진한 극우 파시스트 정당 황금새벽당은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황금새벽당은 2015년 당시 6.99%를 득표해 18명의 의원을 배출했으나 이날 의석 확보 하한선인 3% 득표에 미치지 못하며 몰락했다. 반(反)이민 정책을 내세운 네오나치 계열의 황금새벽당은 최근 살인과 폭력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는 등 구설수에 올랐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