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이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 위안소를 설치해 운용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제주도에 위안소가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첫 사례가 될지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와 성산리는 8일 서귀포시 성산리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 강점기 성산리 일본군 위안소의 존재를 확인하는 제주대 조성윤·고성만 교수의 ‘태평양 전쟁 말기 요카렌(予科練)의 제주도 주둔과 위안소-성산 지역을 중심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해당 논문은 2010년부터 당시 목격자인 마을 주민을 인터뷰하고, 현지조사 및 일본 사료 등을 교차로 분석한 결과다.
요카렌(予科練)은 구 일본 해군의 소년 항공 요원 지망생이다.
논문에 따르면 1945년 일본 해군은 미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일명 자폭 특공대인 신요대 3개 부대를 제주도에 배치했다. 모두 진해경비부 소속으로 제45신요대는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 일출봉, 제119신요대는 서귀포시 서홍동 삼매봉, 제120신요대는 제주시 한경면 고산 수월봉 해안에 배치됐다.
제45신요대 병사는 모두 요카렌 출신으로 16세부터 20세 전후의 청년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매일 자폭용 병기인 신요 보트에 올라 성산 일출봉 일대 해안에서 훈련을 받으며, 최전선에서 미군 함정에 돌격할 준비를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성산읍 주민 오시종(90)씨가 당시 위안소 장소와 요카렌의 행태를 증언했다.
오씨는 “성산 지역에서 운용됐던 위안소는 두 곳이었다. 민가를 개조한 위안소의 경우 내가 살던 집에서 30m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있었다”며 “자폭용 병기부대 소속 생도들이 위안소를 이용하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던 모습이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선명하다”고 회고했다.
일본인이 운영하던 여관과 관련해 그는 “거기는 원래 여관으로 쓰이던 초가집이었다. 당시에도 높은 담이 있었는데 위안소가 된 후 밖에서는 완전히 보이지 않도록 그 위로 담을 세단 더 쌓았다”며 “초가집 지붕에 입구를 갈대로 둘러 쳐서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게끔 했다”고 말했다.
조성윤 교수는 “연구를 하면서 만난 성산 주민 6명 중 위안소의 상황을 목격하고 그곳의 여성을 직접 만난 것은 오시종씨가 유일하지만, 그의 증언은 수차례의 인터뷰와 현지 조사, 그리고 일본 측 자료를 교차 분석한 결과 충분히 믿을 만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이번 연구 발표가 제주뿐 아니라 국내 위안소 연구를 촉진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다만 두 교수는 정황상 성산읍에 위안소가 설치·운영됐을 것으로 추정될 뿐 이를 확정하기에는 아직 남겨진 과제가 많다고 덧붙였다.
제주=주미령 기자 lalij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