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교육·취업규칙 개정 등 현장 변화 적은 탓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얼마나 아시나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법에 명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오는 16일부터 시행된다. 지난해 말 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각 직장, 업무 현장에 적용되는 것이다. 명백한 폭력이나 부당노동행위, 성희롱 등 기존 법에서 처벌 대상이 되던 행위와 달리 당사자가 고통받으면서도 문제삼기 어려웠던 은밀한 괴롭힘, 상사의 갑질 등을 법적으로 문제삼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정작 직장인들이 법 시행에 대해 명확히 모른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직장갑질119가 6월 27일부터 지난 1일까지 19~5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16일부터 시행되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응답은 33.4%에 그쳤다. 10명 중 7명 가까이는 법 시행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법 시행과 관련한 사내 교육이나 취업규칙 개정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그 원인 중 하나다. 이번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21.1%만 개정법 관련 교육을 받았다고 했고, 취업규칙이 개정됐다는 응답은 12.2%에 그쳤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66.6%였다. 자연히 직장 내 문화가 변했는지에 대한 체감도도 낮았다. 지난해 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직장 내 괴롭힘 문화 등에 변화가 없다는 응답은 68.1%로 조사됐다.
그동안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서 참거나 모른척 했다는 응답도 65%로 높게 나타났다.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16.6%에 그쳤다. 참거나 모른척 한 이유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66.4%)’가 가장 많았다. 29% 응답자는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도 모른척하거나 참았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괴롭힘을 당하거나 알고도 묵인한 직장인 95.4%가 상황이 달라지지 않거나 불이익을 두려워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면서 “새로 시행되는 법에서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규정이 있다는 점을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는 직장에서 겪을 수 있는 불합리한 처우별로 직장인들의 인식 수준인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도 조사했다.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는 이번에 처음 개발한 것으로, 100점 만점 기준 점수가 높을 수록 직장갑질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감수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번 조사 결과 응답자 평균 감수성 지수는 68.4점이었다. 감수성이 낮게 나온 항목들은 불시 퇴사시 근로자의 책임, 능력부족에 따른 권고사직, 시간외 근무, 부당한 지시, 채용공고 과장 등 순이었다. 휴일·명절 근무, 신입사원 교육 문화, 법정휴가 준수 문제, 휴일 체육대회·MT, 회식, 음주 문화 등도 감수성이 낮은 영역에 포함됐다. 일과 회사 중심 문화, 집단주의와 능력주의 문화 등과 관련되는 사항들이다.
상대적으로 임금체불 문제나 폭언·모욕 등에 대해서는 감수성이 높게 조사됐다. 지난해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나 양진호 전 위디스크 회장 등 사건으로 상사 갑질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직장 내 폭언과 모욕 등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성별·연령, 직장 내 지위 등에 따라 감수성 수준에도 차이가 있었다. 특히 상위 관리자급과 일반 사원급의 평균 차이가 5.93점으로 가장 높았다. 연차휴가나 모욕, 회식·노래방, 야근, 모성보호, 펜스룰(성희롱 괴롭힘 대화 불안), 부당한 지시 순으로 격차가 컸다.
남녀 차이도 컸다. 직장갑질 감수성은 남성 66.41점 여성 70.99점으로 여성이 4.58점 높았다. 30개 항목 중에서 남녀의 평균 격차가 10점 이상 나타난 항목은 펜스룰, 음주, 반말, 회식·노래방, 모성보호 등 5개였다.
연령별 직장갑질 감수성 차이는 성별 차이보다는 적었지만 펜스룰과 회식·노래방, 휴일 MT, 장기자랑, 휴일 근무 등에서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은 집단주의 문화보다 개인주의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결과로 분석됐다.
직장갑질119는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가 개인의 갑질 감수성을 측정하는 자료인 만큼 기업이나 기관에서 관리자들의 감수성을 조사해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직장인 누구나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 테스트 페이지(test-gabjil.com)에 들어가시면 자신의 감수성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