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섭의 대기실] LCK 어셈블

입력 2019-07-08 05:00

“개인적으로 지난 ‘리프트 라이벌즈’까지는 팀마다 간절함의 온도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네 팀 모두 목표가 같았다. 처음부터 우승이 목표였고, 간절함이 있었다. 전략 공유, 챔피언 상성까지 오픈하면서 새벽까지 계속 노력하고 있다.” (킹존 드래곤X 강동훈 감독)

“이번 연도만큼은 네 팀이 하나가 된 것 같다. 전략 같은 부분을 다 공유하고 연습했다. 그래서 이번 연도만큼은 꼭 우승하고 싶다는 생각을 다들 갖고 있다. 우리 팀만 졌는데, 내일은 분발해서 꼭 이기겠다. 앞에 3팀이 너무 잘해줘서 고맙다.” (SK텔레콤 T1 김정균 감독)

지난 6일, 2019 LoL 리프트 라이벌즈 결승전을 앞두고 한국 미디어와 인터뷰 자리에서 LCK 대표 팀들의 감독들은 ‘간절함’이란 단어를 수차례 언급했다. 그들은 LCK가 유일하게 품어보지 못했던 대회, 리프트 라이벌즈에서 우승하고자 하는 의지를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리프트 라이벌즈는 독이 든 성배다. 상금은 적고, 명예는 없다.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해서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처럼 ‘세계 최고’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그러나 준우승을 하면 아픈 비난을 받는다. ‘헤엄쳐서 돌아오라’는 레퍼토리는 지난 2년 동안 이미 식상해졌다.

얻는 건 적지만, 잃는 것은 많다. 참가 팀들은 LCK 서머 시즌 1라운드 막바지에 주어지는 휴식을 포기하고 연습에 매진했다. 3개월짜리 장거리 레이스에서 휴가를 반납하는 건 치명적이다. 새 패치 버전에 대한 전략을 제일 먼저 공개했고, 참가 팀끼리는 가감 없이 공유했다.

담원 게이밍 김목경 감독은 7일 우승 직후 한국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시즌을 포기하더라도 리프트 라이벌즈 기간 만큼은 LCK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많은 것들을 오픈했다”고 말했다. 나비는 이미 수천 번을 날갯짓했다. 어떤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부 선수들은 대회를 치르며 잔병치레를 하기도 했다. 담원은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목감기에 걸렸다. 담원 김목경 감독은 6일 인터뷰에서 “조금 힘든 상황이긴 한데 최대한 많이 재우고, 약을 먹이며 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다행히 결승에 직행해 하루를 푹 쉬었다. 어제보다 나아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대회지만, 올해 LCK 대표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우승을 갈망했다. 격하된 LCK의 위상을 다시 드높이기 위해서다. LCK는 2018년과 2019년 ‘LoL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우승 실패, 2018년 롤드컵에서의 8강 전멸 등으로 명예가 크게 실추됐다. 이제 세계 최고의 대회라고 소개하기는 민망하다. 리그에 소속된 선수들의 자부심도 몹시 훼손됐다.

그래서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 났었던 ‘페이커’ 이상혁, ‘타잔’ 이승용, ‘데프트’ 김혁규, ‘너구리’ 장하권이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고 뭉쳤다. LCK의 명예 회복을 위해 서로가 등을 맞댔다. 지난 4월 개봉했던 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대사가 떠오른다. LCK가 ‘어셈블(Assemble)’했다.

일주일 동안 4개 팀이 원 팀(One Team)처럼 행동했다. 킹존 강동훈 감독은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준비했다”고 말했다. SKT 김정균 감독은 인빅터스 게이밍(IG)전 패배 직후 “LCK 팬들에게 죄송스러웠다”며 고개를 떨궜다. 팀들은 번갈아가며 스크림을 진행했고, 코치진은 새벽 4시까지 밴픽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각종 고생 끝에 3년 만의 우승으로 보답받았다.

비슷한 역사를 본 적이 있다. ‘드림팀’으로 불리는 미국 농구 대표팀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미국은 4년 뒤 베이징 올림픽에 르브론 제임스, 코비 브라이언트, 드웨인 웨이드 등 특급 스타들을 파견했다. 이른바 ‘리딤 팀(Redeem Team)’을 구성했고,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정상을 탈환했다.

올해 LCK를 대표해 리프트 라이벌즈에 참가한 선수들의 마음가짐은 리딤 팀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소속된 리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4개 팀 중 몇몇은 프로게이머의 최종 목표인 롤드컵으로 가는 길이 조금 더 복잡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로지 LCK의 정상 탈환만을 위해 뭉쳤고, 팬들이 그토록 바라던 트로피를 갖고 왔다. 한 명의 LCK 팬으로서 그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