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얻어맞은 아내는 쓰러지듯 고꾸라졌다. 이내 머리를 감싸쥔 채 계속되는 남편의 주먹질을 견뎠다. 웃통을 벗어젖힌 남편은 킥복싱 경기에서나 볼 법한 발길질을 무자비하게 이어갔다. 만들지 말라고 했던 음식을 만들었단 이유였다. 남편은 “XX새끼야” 등 욕설을 하며 “음식 만들지 말라고 했지. 치킨 와, 치킨 먹으라고 했지”라는 말을 반복했다. 주저앉은 아내는 머리를, 옆구리를 수차례 얻어맞았다. 기저귀 차림의 두 살짜리 아이가 울부짖으며 엄마 앞을 막아서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난 4일 오후 9시쯤 전남 영암의 다세대 주택에서 한국인 남편 A씨(36)가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B씨(30)를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이 영상은 6일 오전 B씨의 지인이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B씨는 경찰에서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해 사건 당일도 스마트폰을 아이 가방에 끼워 놓았다고 진술했다. B씨는 “소주병으로도 맞았다”고 진술했지만 남편은 페트병으로 때렸을 뿐이라며 이를 부인했다. 여성이 계속 맞아온 이유는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에서였다. 지인은 경찰에 “B씨가 남편에게 많이 맞았는데 한국말을 잘 못해서 내가 대신 신고했다”고 털어놨다.
영암경찰서는 특수상해와 아동학대 혐의로 7일 남편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아들을 낚시대로 세차례 때린 혐의도 추가됐다. 보복범죄 우려가 있다는 점도 감안됐다. B씨는 갈비뼈가 골절되는 등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B씨를 병원에, 아이를 아동기관에 보호 중이다.
국내에 체류 외국인 여성 100만명 시대를 맞았지만 아직도 상당수 여성은 폭력 등에 노출돼도 제대로 된 도움을 구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결혼이민자 자격으로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여성은 13만2391명이다. 국내 외국인 국적 여성 10명 중 하나가 결혼이민자인 셈이다.
지난해 국가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 중 38%가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 19.9%는 흉기로 위협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여성가족부가 2015년 실시한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남편과 이혼·별거한 외국인 여성 중 6.4%가 학대와 폭력을 사유로 꼽았다. 2012년 6.3%였던 게 거의 변화가 없다.
이들은 특히 결혼 초기 남편의 폭력에 제도적으로 노출돼 있다. 현행법상 결혼이민을 한 지 1년째에 비자 연장을 하거나 2년째 영주권 신청을 하려면 한국인 남편의 신원보증이 필요하다. 남편에게 사실상 아내를 추방시킬 권력이 있는 셈이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시정 권고를 했지만 아직 바뀐 게 없다. 원칙적으로 남편이 사망·실종되거나 한국 국적 자녀를 키우는 경우, 혹은 남편 잘못으로 이혼했다는 걸 증명하면 이혼을 해도 국내에 계속 머물 수 있지만 외국인에겐 쉽지 않다.
정부는 제대로 된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가정폭력특별법에 따라 3년마다 가정폭력 실태 조사를 벌이지만 여기에 국제결혼이 포함됐던 건 2010년 한 번뿐이었다. 설문한 사례도 307건에 불과해 표본 자체가 부실하다. 여가부 조사에서 결혼이주여성의 30.7%가 도움이나 의논을 청할 사회적 관계가 없다고 답한 점을 고려하면 알려지지 않은 채 묻힌 가정폭력 실태부터 제대로 들여다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는 “결혼이주여성이 가정폭력을 당하는 데는 한국의 성차별적 가정 문화와 국가 제도의 문제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면서 “실태 조사와 함께 궁극적으로 국제결혼을 평등하게 만드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