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원동 붕괴사고 당시 안전 책임자 사실상 없었다”

입력 2019-07-07 17:18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사역 인근에서 철거 중인 건물 외벽 구조물이 무너진 모습. 뉴시스

20대 예비신부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서초구 잠원동 건물 붕괴 사고 당시 철거 현장에는 안전을 책임져야 할 관리자가 사실상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철거업체 소속 현장소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A씨는 사고 당일 현장에 처음 투입돼 업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가 예고된 인재였다는 비판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4일 예비신부 이모(29)를 포함해 사상자 4명을 낸 신사역 부근 건물 사고에 대해 “붕괴 당시 안전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7일 밝혔다. 경찰은 “사고 직후 현장에는 현장소장이라고 주장하는 A씨와 인부 3명이 있었지만 A씨가 실제 현장소장인지 여부는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철거 계획에 따라 시공이 진행되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상주 감리자도 사고 당시 현장에 없었다고 확인했다.

경찰은 A씨가 철거업체 측의 ‘눈속임용 관리자’였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고 당일 현장소장으로 처음 근무한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소장으로서 알아야 할 공사 업무에 대한 지식이 현저하게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철거 현장 관계자들이 사고 전 붕괴 위험 징후를 당국에 알리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서초구 관계자는 “현장에서 시멘트 조각이 떨어졌다는 등의 위험 징후 관련 보고는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며 “만약 보고가 있었다면 바로 현장 점검에 나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붕괴 위험 징후의 경우 현장에 있는 안전 책임자가 가장 먼저 포착하고 알렸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철거업체에 대한 전반적 조사와 함께 철거현장에서 상주 감리자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2017년 낙원동 숙박 시설 붕괴 사고 이후 철거 현장에도 감리자가 상주하도록 건축 조례를 개정했다. 국회는 지난 4월 건축물 철거 작업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는 건축물 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오는 내년 5월 시행된다.

경찰은 지난 6일부터 붕괴한 건물의 건축주와 철거업체 관계자, 인부 등과 서초구 관계자들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 중이다. 경찰은 특히 건축주와 철거업체 간 계약 내용에 불법 소지가 있는지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지난 5일 사고 현장에서 1차 합동 감식을 하고 “지상 1~2층 기둥과 보가 손상돼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이날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선 이번 사고로 숨진 이씨의 발인이 엄수됐다. 이씨는 결혼을 약속한 황모(31)씨와 함께 차를 타고 신호를 기다리다가 무너진 건물 외벽 구조물이 차를 덮치면서 매몰됐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