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민주 잠룡 바이든, 흑백분리 두둔성 발언 끝내 사과

입력 2019-07-07 17:01 수정 2019-07-07 18:32

미국 민주당 유력 대권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6일(현지시간) 흑백 분리를 지지해온 상원의원들을 두둔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것에 대해 결국 사과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특히 자신이 부통령으로서 미국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가장 신임받은 사람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자기 변호에 나섰다. 문제의 발언으로 인종주의자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적극 진화에 나선 것이다.

미 뉴욕타임스, 영국 가디언 등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주말을 맞아 사우스캐롤라이나주를 방문한 첫날 수백명의 흑인 청중 앞에서 발언의 본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이 반대해온 사람들을 칭송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 데 대해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내년으로 다가온 미 대선에서 남부 주들 중 가장 먼저 프라이머리(정당 예비경선)가 열리는 지역으로 민주당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핵심 관문으로 간주된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날 유세에서 “몇주전 내가 반대해온 인종주의 성향의 사람들을 칭찬하는 듯한 느낌을 준 것이 잘못된 일인가”라고 자문한 뒤 “그렇다. 내 잘못이다. 후회하고 있고, 내 발언으로 누군가가 고통을 받았다면 유감”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오바마 전 대통령과 자신의 유대관계를 상기시키며 지지를 호소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난달 18일 제임스 이스틀랜드·허먼 탈매지 전 민주당 상원의원을 거론하며 이들과 의견은 달랐지만 협업이 가능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두 상원의원은 지난 1973년 바이든 전 부통령이 처음 상원의원이 됐을 때 민주당에 함께 몸 담았던 인물들로 흑인 인권 반대 활동으로 유명한 정치인들이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의견이 다르면 무조건 적이 되는 현실의 미국 정치 풍토를 비판하고자 과거 일화를 소개했다고 했지만, 곧바로 언론의 집중 포화가 쏟아졌다. 흑백 분리주의자들을 옹호했다는 지적이었다.

경쟁자들의 공세도 이어졌다. 흑인인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바이든 전 부통령의 발언을 파고들어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해리스 상원의원은 지난달 27일 민주당 첫 대선주자 TV토론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을 향해 “당신을 인종주의자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당신의 그 발언에 상처 받았다”고 했다. 그는 “당신은 1970년대 ‘버싱(busing)’ 정책에 반대했다”며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좀 더 나은 학교에 가려고 스쿨버스를 타던 흑인 소녀가 바로 나”라고 폭로했다.

버싱은 흑백 인종차별을 없애고자 집에서 먼 학교를 다니게 되더라도 흑인 어린이는 백인 학교로, 백인 어린이는 흑인 학교로 버스에 태워 보내는 반(反)인종주의 정책이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두 상원의원을 섣불리 거론했다가 스스로 화근을 자초한 모양새가 됐다. 반면 해리스 상원의원은 TV토론을 발판 삼아 민주당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2~3위로 뛰어올랐고, 이번 토론의 최대 수혜자로 평가받고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후 당내 대권 주자들에게 해당 발언에 대한 사과 요구를 받았으나 “내 몸에는 인종차별주의자의 뼈가 없다. 무엇을 사과하란 것이냐”며 반발했다. 하지만 비난 여론이 확산되면서 지지율이 소폭 하락하자 끝내 사과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전 부통령의 인종차별성 발언이 그의 대세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라스무센의 내년 대선 양자 대결 여론조사 결과, 바이든 전 부통령이 48%의 지지율로 트럼프 대통령을 4%포인트 앞섰다고 보도했다. 민주당 지지자의 77%도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여전히 우호적인 인식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라스무센이 평소 트럼트 대통령이 ‘정직한 여론조사를 한다’며 공공연히 애정을 드러낸 여론조사업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결과다. 라스무센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내에서 다소 힘겨운 상황이 되겠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양자 대결에서는 여전히 민주당 후보 중 가장 우세했다”고 분석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