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의 중·고등학교에서 시험 문제가 유출되는 사건이 반복해 벌어지고 있다. 중간·기말고사 등을 빼돌린 교사와 학원장 등에게는 가볍지 않은 실형이 내려지지만, 비슷한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성적을 올리려는 ‘시험 공화국’의 민낯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서울의 한 외고에서 1학년 중간고사 영어시험 문제를 주고받은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된 학교 교사 황모(63)씨와 학원 원장 조모(34·여)씨가 5일 1심에서 각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서울북부지법에 따르면 조씨가 학원생들에게 알려준 예상 문제의 지문과 객관식 문제 보기 등이 실제 시험과 일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학교를 졸업한 조씨는 모교에서 강사로 일하며 황씨와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황씨가 친분이 있는 조씨를 돕겠다는 이유로 교사의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윤리 의무를 저버린 채 중간고사 시험 문제를 유출했다”며 “조씨도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이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 “학생들 사이의 공정한 경쟁을 막아 시험제도의 취지를 저해했다”고도 했다.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불거졌던 ‘숙명여자고등학교 쌍둥이’ 사건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전 숙명여고 교무부장 현모(52)씨의 쌍둥이 딸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4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아버지가 교무부장으로 근무하던 2017년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지난해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 5차례에 걸쳐 교내 정기고사 답안을 미리 건네받은 뒤 시험에 응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현씨는 지난 5월 열린 1심에서 같은 혐의로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대학 입시와 직결돼 사회적 관심이 높고 투명·공정해야 할 고등학교 정기고사 처리 절차와 관련해 다른 학교들도 의심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며 중형을 내린 이유를 설명했다.
내신 문제가 사전에 새나가는 일은 중학교에서도 종종 벌어진다. 지난해 서울 강남구의 한 중학교에서는 교사가 일부 학생에게 수학 시험 문항을 미리 알려줘 문제가 됐다. 학교 측은 가정통신문을 내 사과한 후 재시험을 치렀다.
반복되는 시험 문제 유출 사건은 평가의 신뢰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숙명여고 사태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내신을 반영하는 학생부종합전형 등을 줄이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비중을 확대하라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현씨 사건을 맡았던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으로 교육현장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떨어지고 교사들의 사기도 저하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대학 입시로 사회적 보상이 결정되는 구조가 만들어낸 부작용이라고 분석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구본창 정책국장은 “드라마 ‘SKY캐슬’이 보여준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 명문대 진학과 계층 상승은 밀접히 얽혀있다”며 “시험지를 유출하는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입시에서 성공하려는 욕망을 보여준다”고 했다. 구 국장은 “과도하게 서열화된 대학 구조를 손보지 않으면 유사한 범죄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선 현장에 있는 교육자들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재발 방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교사들의 윤리 의식을 고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