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기념일, 역대 최고로 화려했지만 국민은 최악으로 분열

입력 2019-07-05 15: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인 4일(현지시간)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서 연설을 한 뒤 비행쇼를 올려다보고 있다. AP뉴시스

미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독립기념일 행사가 치러졌다. 동시에 역대 최악으로 분열된 미국의 모습이 펼쳐졌다.

미국의 243번째 독립기념일이었던 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대로 화려한 기념식과 관련행사가 펼쳐졌다. 탱크와 전투기까지 동원된 퍼레이드가 펼쳐졌고, 트럼프 대통령은 68년만에 독립기념일에 연설한 대통령이 됐다. 행사 전체에 소요된 비용은 약 1억달러(약 11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링컨기념관 앞에서 ‘미국에 대한 경례’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오늘날 미국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나라가 됐다”고 선언했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불가능은 없다”며 50년전 달 착륙을 포함한 미 역사의 업적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곧 화성에 성조기를 꽂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위대한 미국의 자유와 미래는 그것을 수호할 의지를 가진 미국인들의 어깨에 달려있다. 우리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군 해군 블루 애젤이 독립기념일일 4일(현지시간) 워싱턴 링컨 기념관 위를 저공비행하고 있다. AP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경비대·공군·해군·해병대·육군 순으로 호명할 때마다 각군 소속 전투기와 헬기 등이 행사장 위를 지나며 축하비행을 연출했다.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비롯해 전략 폭격기 F-35, F-22 전투기 등 20여대가 투입된 스카이쇼가 펼쳐졌다. 링컨기념관 주변엔 에이브럼스 탱크 2대와 브래들리 장갑차 2대가 배치되기도 했다.

전투기 축하비행 등 군사 퍼레이드가 독립기념일에 행해진 것은 1991년 걸프전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8000여명의 군인들이 행진한데 이후 28년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7월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혁명 기념일 열병식을 참관한 뒤 미국 국방부에 대규모 열병식을 지시했었다. 하지만 당시 여론의 반대로 포기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이후엔 콘서트 등이 열렸으며, 저녁 9시 넘어 35분간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하지만 이날 독립기념일 행사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사유화했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파성없이 치러지는 독립기념일 행사에 현직 대통령이 연설에 나서면서 내년 대선용 정치쇼라는 논란을 낳은 것이다. 민주당은 “역사적 전통을 깨고 신성한 독립기념일 행사를 자신의 재선 캠페인을 위한 정치의 장으로 변질시켰다”고 비난했다.

워싱턴에서 펼쳐진 불꽃놀이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비판을 의식해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며 통합의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현재가 역사상 최고라며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민주당 대선주자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대통령은 이날이 자신의 생일이 아니라 미국의 생일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고 말했다고 CBS 방송은 전했다.

이례적이었던 군사 퍼레이드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대선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이건 독재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훌리안 카스트로 전 장관도 “트럼프가 퍼레이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돈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독립기념식을 위해 트럼프 행정부는 국립공원을 관리하기 위한 입장료 수입 등 250만 달러(약 29억원)를 전용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워싱턴에서 열린 불꽃놀이를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폭죽업체 ‘팬텀 파이어웍스’로부터 75만달러(약 9억원) 규모의 폭죽을 기부받은 것도 논란을 낳았다. 이 업체가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중국산 폭죽에 대한 관세부과 반대 로비를 해온 회사라는 점이 보도되면서 이해충돌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팬텀 파이어웍스는 폭죽을 거의 전적으로 중국산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팬텀 파이어웍스의 기부 이후 공교롭게도 폭죽 관련 관세 부과를 연기했다.

이날 언론만이 아니라 독립기념식 행사장에도 반트럼프 시위대가 등장해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섰다. 반전단체 ‘핑크 코드’ 등 시위자들은 반트럼프 시위의 상징인 ‘베이비 트럼프’ 대형 풍선을 설치하기도 했다. 시위대 측은 성명을 통해 “대통령의 독립기념일 정치화에 반대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고 설명했다. 다만 주최측의 불허로 시위대는 베이비 트럼프 풍선을 높이 띄우지 못하고 지상에 묶어둬야 했다.

미국 워싱턴에서 시위대 일부가 트럼프 대토령의 독립기념일 사유화를 비판하며 성조기에 불을 붙이고 있다. AP연합뉴스

특히 지난 1984년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성조기 소각 시위를 벌였던 그레고리 리 존슨이 이날 백악관 맞은편에 있는 라피엣 공원에서 성조기에 불을 붙였다. 존슨은 “모든 파시스트 의제에 항의하기 위해 깃발을 불태웠다”고 밝혔고 지지자들은 “미국은 결코 위대하지 않았다”고 외쳤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인쇄된 모자를 쓴 대통령 지지자들이 몰려와 이들을 공격하는 등 소란이 벌어졌다. 경찰 당국은 존슨을 포함해 최소 2명을 체포하고, 양측 모두를 공원에서 내보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