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아들, 예비신부 안 물어… 품에서 죽은 지 아는 것 같다”

입력 2019-07-05 10:28 수정 2019-07-05 10:29
종잇장처럼 구겨진 매몰 차량. 연합뉴스

“내일모레 결혼할 애가, 강남 한복판에서 이렇게 가다니요….”

4일 오후 2시24분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지하철 3호선 신사역 인근에서 지상 5층, 지하 1층짜리 건물이 철거 작업 도중 붕괴했다. 3층 천장 ‘슬래브’(벽과 벽 사이를 연결하는 바닥과 천장)가 튀어나와 도로를 덮쳤다. 가로·세로 약 10m 무게 30t의 이 거대한 잔해물은 예비부부가 타고 있던 승용차를 포함한 차량 4대를 눌렀다.

사고 4시간 만에 예비남편 황모(31)씨가 구조대에 의해 구조됐고 약 30분 뒤 예비신부 이모(29)씨가 나왔으나 결국 숨졌다. 두 사람은 결혼식을 8개월 앞두고 있었고 사고 당시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던 길이었다.

황씨 부친에 따르면 현재 황씨는 오른쪽 허벅지 감각이 없는 상태다. 이씨가 숨진 사실을 황씨가 알고 있느냐는 물음에 황씨 부친은 “(아들이) 얘기도 안 하고 물어보지도 않고 있다”며 “자기 품에서 죽은 지 아는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차 안에 갇혀 있을 때도 의식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의 빈소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비보를 듣고 달려온 이씨 부친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며 어딘가에 계속 전화를 걸었다. 병원 밖으로 나가 초조한 듯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이씨 부친은 “(숨진 딸은) 언니와 동생을 참 잘 돌보는 착한 딸이었다”며 “(황씨는)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이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예쁜 사위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둘이 성격도 잘 맞아서 싸우는 일 없이 서로 좋아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흐느꼈다. 또 “이런 일이 어떻게 발생했으며 책임자들은 뭘 하는 건지 꼭 밝혀내야 한다”며 “일을 덮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말했다. 이어 딸의 영정사진을 찾는다며 애통한 표정으로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살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건물 붕괴사고' 철거업체 관계자들이 4일 밤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무릎을 꿇고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씨 부친은 조문 온 철거업체 관계자들 앞에서 분을 참지 못하기도 했다. 그는 “내일모레 결혼할 애가 죽었다”며 “공사를 대체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느냐”고 울부짖었다. 이어 “예물을 찾으러 가는데 강남 한복판에서 이게 말이 되느냐”며 오열했다. 철거업체 관계자들은 장례식장 1층 로비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수차례 사과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