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사망이 공식 확인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를 부른 재벌의 마지막은 장례비 900달러의 무연고 사망이었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예세민)는 정 전 회장이 지난해 12월 1일(현지시간) 에콰도르 과야킬시에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4일 밝혔다. 사망 원인은 만성신부전 등이다. 정 전 회장의 시신은 숨진 다음 날 과야킬시 소재 화장장에서 화장됐고, 이후 사망신고 등 행정절차도 마무리 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해외도피생활 21년 만에 붙잡혀 국내로 송환된 정 전 회장의 4남 정한근씨는 부친이 에콰도르에서 사망해 화장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정씨 진술과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진위 여부를 확인해왔다. 검찰 관계자는 “에콰도르 정부로부터 출입국관리소 및 주민청 시스템에 사망확인서와 동일한 사망사실이 등록돼 있었다”며 “사망확인서가 진본인 사실도 확인받았다”고 말했다.
한근씨가 제출한 노트북에서는 정 전 회장의 사망 직전 사진, 입관식 사진, 장례를 치르는 1분 분량의 영상이 발견됐다. 검찰은 포렌식을 통해 해당 영상이 조작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한근씨는 사망 당시 국내에 있는 가족들에게 정 전 회장이 사망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관련 사진과 영상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회장은 1997년 경제위기의 단초가 됐던 ‘한보사태’의 장본인이다. 국세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1974년 한보상사를 세웠다.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한보그룹은 1997년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부도를 맞았다.
정 전 회장은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지만, 병보석으로 특별 사면됐다. 이후에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대학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다가 2007년 5월 지병 치료를 이유로 출국했다 자취를 감췄다. 정 전 회장은 츠카이 콘스탄틴(TSKHAI KONSTANTIN)이라는 이름의 1929년생 키르기스스탄인으로 위장해 살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재계 14위까지 올랐던 재벌 총수는 도피 생활 12년 만에 무연고 사망자로 발견됐다. 장례에는 900달러(105만원)가 들었다. 정 전 회장이 현지에서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된 것은 아들 한근씨와 정 전 회장이 각각 타인 명의의 이름을 썼기 때문에 서류상으로 부자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근씨는 아버지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회한에 검찰 진술 당시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회장은 A4용지 150쪽 분량의 자필유고를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정 회장이) 외국으로 도피한 직후부터 2015년쯤까지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 사업하던 시절 등 자기 생애에 대한 얘기가 주로 적혀 있다”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