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대가 입법회 청사를 점거하고 시설과 집기를 부수는 폭력 사태로 인해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홍콩 정부가 대규모 시위대 검거 작전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매체들은 홍콩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엄벌을 촉구하는 등 시위의 폭력성과 불법성을 집중 부각시켰다. 홍콩 당국은 점거 시위로 아수라장이 된 입법회 청사 내부를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홍콩 경찰이 입법회를 점거하고 기물을 파손한 수백명의 시위자를 색출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푼모(31)씨를 처음으로 체포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4일 전했다. ‘몽콕 점거 화가’로 알려진 그는 지난달 21일 완차이 경찰본부 포위 시위때도 체포된 적이 있다.
경찰은 입법회를 점거한 시위대 가운데 수십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대규모 검거 작전을 벌이기 위해 법무부의 법적 조언을 받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 입법회 점거에는 수백명이 가담한 것으로 전해져 검거가 본격화되면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경찰은 점거 시위 직후인 2일부터 현장에서 지문을 채취하는 등 가담자 색출을 위해 다양한 증거 수집에 주력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입법회 건물에서 헬멧, 마스크, 금속 막대 등 수천 개의 증거물이 확보됐다”며 “전문가들이 지문을 수집하고 마스크 등에서 DNA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홍콩과 가까운 선전에 한 달 가까이 태스크포스(특별대응팀)를 꾸려 홍콩 시위의 동향을 면밀히 주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응팀은 홍콩에서 ‘100만명 시위’가 벌어진 지난달 9일 이후 선전에 파견됐다. 홍콩 업무를 총괄하는 한정 정치국 상무위원은 ‘송환법 보류’를 발표한 지난달 15일 이전에 캐리 람 행정장관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의 홍콩·마카오 판공실, 공안부 등 관련 부서들은 홍콩에 요원들을 파견해 정보 수집을 하고 있다.
입법회를 점거한 폭력 시위 이후 중국 관영매체들은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며 여론몰이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판은 이날 논평에서 “홍콩 입법회 점거 시위는 홍콩의 법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공공질서를 어지럽혔다”며 “폭력 시위대를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사평에서 홍콩 시위대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에 대해 “헌트 장관은 시위대를 비난하지 않은 채 1984년 홍콩반환협정을 지켜야 한다는 요구만 하고 있다”며 “헌트 장관의 태도는 정도를 매우 벗어난 것”이라고 비난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도 논평에서 “헌트 장관의 발언은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홍콩 당국은 지난 1일 시위대가 점거했던 입법회 청사 1,2층을 1시간 30분 동안 언론에 투어 형식으로 공개했다. 이는 일부 시위대의 과격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SCMP에 따르면 건물 내부 벽 곳곳에는 ‘개 경찰관’ ‘중국 공산당 타도’ ‘우리는 진짜 보통선거를 원한다’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 등 스프레이로 쓴 반정부 구호와 욕설이 눈에 띄었다. 의사당 내부에는 일부 모니터와 의자가 파손되고, 각종 서류가 찢겨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의사당 외부 벽에 걸려 있던 입법회 역대 주석들의 초상화는 상당수 떼어져 있었고, 안전통제실의 모니터와 복사기 등 집기도 부서져 있었다. 건물 유리문도 박살 나 로비 바닥에는 깨진 유리 파편이 널려있었다. 당국은 1차로 파악된 피해액만 1000만 홍콩달러(약 15억원) 정도로 추산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