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신(新)독재’ 등의 표현을 써가며 현 정부를 독하게 비판했다. 연설문에는 ‘독재’라는 말이 8번이나 등장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예상 밖으로 차분하게 본회의장 자리를 지키며 나 원내대표의 연설을 끝까지 들었다. 날선 비난에 무대응 전략으로 응수한 셈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3월 12일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 나선 나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의 수석대변인” 발언을 꺼냈을 때는 단상으로 나가 고함을 치고, 일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본회의장이 난장판으로 변했었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지금 우리 국민들은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로 시작하는 연설에서 문재인정부를 작심하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 불안은 거의 공포 수준”이라며 “대통령이 나서서 국민을 쪼개고 가른다. 6·25 전사자 앞에서 김원봉을 추켜세웠다. 스스로 대한민국 대통령임을 망각하는 발언이었다”고 성토했다.
또 “지난 문재인 정권 2년은 반대파에 대한 탄압과 비판세력 입막음의 연속이었다”며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이 아닌, 이 정권의 절대권력 완성을 위해 민주주의를 악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비난도 날렸다.
이밖에도 “대통령이 분노의 여론을 자극하고 증오의 정치만을 반복해왔다” “지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은 악의 탄생이었다” “이 정권의 ‘조작·은폐 본능’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드러났다”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어휴, 참…”하며 한숨을 쉬거나 몇 차례 야유를 보냈지만 3개월여 전과 같은 격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아예 책을 읽거나 의자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는 의원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지난 3월 이해찬 대표까지 나서 “대한민국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라고 발끈하는 등 한국당과 정면충돌했다가 정국이 급속도로 냉각됐던 사례를 반면교사 삼은 것으로도 보인다. 당시 나 원내대표는 ‘나다르크’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대여 투쟁의 선봉장 이미지를 굳혔었다.
민주당은 대신 이날 본회의가 끝난 뒤 열린 의원총회에서 나 원내대표 연설에 대한 ‘뒤끝’을 보여줬다. 이 대표는 “어제와 오늘 (민주당과 한국당의) 두 대표 연설을 봤는데 비교가 되도 너무 크게 비교가 된다. 더 이상 얘기하면 누가될까…”라고 말해 의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때로는 근거도 없고, 때로는 맹목적 비난에 가까운 현실 속에서 그래도 오늘 의원들이 인내하면서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힘이 어색한 박수보다 우월했다고 생각한다. 그 인내심에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라며 나 원내대표 연설을 비꼬았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