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라, 되도록 많이 벌라” 조선시대 선비가 쓴 재테크 서적

입력 2019-07-04 11:20 수정 2019-07-04 11:47

조선시대 선비가 쓴 재테크 서적이 발굴됐다. 군자는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당대의 통념에 도전하면서 “돈을 벌라, 될 수 있으면 많이 벌라”는 대담한 주장을 담고 있다. 농본주의 국가 조선에서 상업의 필요성은 물론 재산 불리는 법과 부자 유형까지 기술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저작으로 평가된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영조 때 문인인 식니당(食泥堂) 이재운(1721∼1782)이 조선시대의 일반적 경제관념과 상업관을 뒤집는 이론과 사례를 정리한 책 ‘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을 발굴해 그 내용을 분석한 논문을 ‘한국실학연구’에 게재했다고 4일 밝혔다.

안 교수에 따르면, 해동화식전은 일몽(一夢) 이규상(1727∼1799)이 쓴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에 소개되긴 하지만 실물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규상은 병세재언록에서 “이재운은 대흥 사람으로 남인의 서계(庶系)”라고 소개하고 “해동화식전은 참으로 용문(龍門·사마천)의 솜씨이다. 변화가 무궁하며 붓끝이 굉장하고 빛이 나서 근세 백년 사이에 이런 작품이 없다”고 극찬했다.

이재운은 해동화식전 첫머리부터 청빈(淸貧)이나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운위하는 군자론을 거부한다.

이재운은 “군자는 재물을 이용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소인은 재물을 얻으려고 자신을 희생한다”며 “군자가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군자가 세 곱절의 이윤을 남기며 장사하는 상인의 수완을 잘 안다고 하여 잘못이라 책망할 이유가 없다”고 적었다.

이어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리면 바로 울음을 그치고, 늙은이도 자손들이 고기와 죽을 내어오면 웃음을 보이며 기쁜 표정을 짓는다”면서 “나면서부터 잘 아는 사람이든 아니면 배워서 잘 아는 사람이든 부유하기를 구하고 재물을 모으기보다 앞세우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인간의 이익 추구 본능을 옹호했다.

안 교수는 이에 대해 “이재운은 양반들에게도 생업 전선에 뛰어들라는 취지로 말했다”며 “그는 대놓고 돈을 벌라고 했고, 될 수 있으면 많이 벌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재운은 해동화식전에 부자 9명에 대한 일종의 열전을 실으면서 그중 5명을 통해 부자가 되는 5가지 길을 제시했고 4명은 자수성가형 부자로 소개했다.

그는 최고의 재테크 방법으로 치산(治産)을 잘해 재물을 불리는 것을 꼽았다. 이어 아끼고 절약하는 방법, 변화를 일으켜 형통하는 방법, 고생을 참고 근면하게 일하는 방법, 수완이 없어 거지로 사는 방법을 나열했다.

특히 흥미로운 이재 방법이 절약인데, 구두쇠 자린고비의 사연을 담았다. 안 교수는 “주인공은 자린급(煮吝給)으로 충주의 유명한 구두쇠인데, 극단적으로 절약해 부를 일궜다”며 “이재운은 인색하게 재물을 축적하는 것을 조금도 비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재운은 자수성가형 부자 사례로 부부가 합심해 부를 일구는 방법, 맨몸으로 거부가 되는 방법, 대가족을 만들어 큰 부를 일구는 방법, 흉년에 기민을 구제하고 큰 부를 일구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재운은 명문가 한산이씨 서자였다. 5대조가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이고, 조부는 이인빈이었으며, 부친은 이인빈 서자 이식근이었다. 본래는 북인 핵심 가문이었으나 인조반정 이후 남인으로 행세했다.

안 교수는 “이재운 집안은 이산해 이래 경제사상과 상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며 “이재운이 해동화식전을 저술한 것은 평지에서 돌출한 것이라기보다는 집안 학풍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가 최근 입수한 해동화식전은 경진년(1820) 필사기가 있는 책과 ‘택리지(擇里志)’와 함께 수록된 이규상 수택본이다. 안 교수는 “저술 시기는 명확한 근거가 없어 단정하기 힘들지만 174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고 얘기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