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를 처벌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던 의사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지난 4월 낙태죄가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것을 고려했다.
광주지법 형사3부(부장판사 장용기)는 의료법 위반, 업무상승낙낙태, 사기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씨의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고 4일 밝혔다. 1심 재판부는 세 가지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업무상승낙낙태 혐의는 무죄로 판단해 형량을 징역형에서 벌금형으로 낮췄다.
재판부는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관련 형법 조항이 효력을 상실했다”며 “A씨가 낙태 수술을 할 당시에도 위헌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실제 처벌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등 참작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A씨는 허위의 진료 기록을 반복해 작성했고 이를 근거로 많지는 않지만 요양급여를 편취해 의료인으로서 직업윤리를 저버렸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지난 4월 11일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임신부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위헌”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국회와 행정부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한편 A씨는 2013년 1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광주의 한 병원에서 임신부들의 요청으로 67차례에 걸쳐 낙태 수술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낙태 수술 경과를 확인하러 온 환자들의 진료기록부에 무월경, 염증 등 다른 질환을 적고 148차례에 걸쳐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양급여 135만원가량을 허위로 청구하기도 했다. 또 이를 다른 진료과 의사가 진료한 것처럼 기재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A씨는 “낙태 수술비용 자체를 청구한 적은 없고, 후유증 치료에 따른 의료보험을 청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1심이 진행 중이던 2017년 2월 형법 269조와 270조의 자기낙태죄, 동의낙태죄 규정이 “임신부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A씨의 의견을 받아들여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앞서 2012년에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의 중요성을 이유로 재판관 4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과 임신부의 자기 결정권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검찰도 ‘낙태 사건 처리기준’을 마련해 임신 12주 이내, 인정할만한 사유가 있는 낙태 피의자는 기소유예하기로 했다. 12~22주 이내에 낙태를 했거나 사유가 논란이 있는 경우는 새로운 입법 전까지 기소를 중지한다. 실제로 광주지검은 지난달 20일 원치 않는 임신을 한 미성년자가 임신 12주 이내에 낙태를 한 사건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