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 도시락 주러 왔어요” 빵·우유, 도시락 챙긴 아이들…파업 첫날 현장 풍경

입력 2019-07-03 17:57
전국 학교비정규직노조 총파업으로 급식이 중단된 3일 대구 수성구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이 불이 꺼진 채 텅 비어 있다. 뉴시스

전국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2만2000여명이 파업에 들어간 3일 서울 중구의 한 초등학교. 아침 8시면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조리사들의 손놀림이 한창 바쁠 때지만 이날은 급식실 전체에 불이 꺼진 채 적막감이 흘렀다.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받아든 메뉴는 포장된 소보루빵과 브라우니, 푸딩, 포도주스였다.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내 친구들과 나눠먹는 학생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서울 은평구의 다른 초등학교에서는 영양사 혼자 소보루빵 박스를 옮기느라 진땀을 뺐다. 원래 이 학교 급식실에서는 영양사 포함 6명의 급식 조리사들이 매일 650인분의 식사를 만들었다. 학교 측은 파업에 대비해 오는 5일까지 간편식 위주로 대체식단을 짜둔 상태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첫날 일선 학교 곳곳에서는 이렇듯 급식과 돌봄교실 운영에 차질이 빚어졌다. 그러나 급식·돌봄 대란이라 불릴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다. 일부 아이들은 “평소와 다른 메뉴”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학부모들은 되풀이되는 파업에 불편함을 토로했다.

파업 여파로 4교시 단축수업을 한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는 낮 12시가 되자 자녀를 데리러 온 보호자들로 북적였다. 4학년생 자녀를 둔 박모(39)씨는 “오후 출근 전 아이에게 도시락을 주려고 학교에 왔다”며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도 부탁받아서 3개나 만들었다”고 말했다. 워킹맘인 이모(44)씨도 “아이가 방과 수 후업을 들어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면서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학년 학생들은 하교 후 삼삼오오 인근 편의점, 분식점으로 향했다. 분식집 사장 엄모(50)씨는 “점심시간에 아이들을 보내겠다고 미리 연락해온 엄마들이 많아 평소보다 1시간 일찍 나와 준비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한 중학교는 점심시간에 소보루와 소시지빵, 음료수를 학생들에게 제공했다. 원래는 보리밥·두부된장찌개·오향장육·콩나물무침·배추김치 식단으로 구성된 급식이 예정돼 있었다. 이날 기말고사가 끝난 학생들은 급식 대신에 지급된 빵과 음료수에 대해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한 남학생은 “파업을 하는 분들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빵을 점심으로 먹기에는 부족하다”며 “집에 가서 엄마한테 밥을 달라고 해야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빵과 도시락 등으로 점심을 대체했지만 큰 불편은 느끼지 않는 분위기였다. 경기북부의 한 고등학교 교감은 “밥 대신 나눠준 빵과 우유를 오히려 좋아하는 학생들도 많았고 일부 학생들은 양이 적어서 아쉬워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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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던 업무를 일시적으로 떠맡았다. 충북 지역의 초등교사 박모(35)씨는 “파업이 진행되는 3일 동안 교사 10명이 3~5시간씩 나눠 돌봄교실을 지키기로 했다”며 “평소 하던 일이 아니어서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할지 부담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 조모씨(30)는 “평소보다 혼란스럽긴 하지만 급식·돌봄 선생님들의 근로 환경을 알기에 파업 취지에는 공감한다”며 “다만 파업 기간이 더 길어지지 않을지 걱정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구인 조민아 황윤태 기자, 대구=최일영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