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비건 “미국이 원하는 건 北대량살상무기 완전 동결”

입력 2019-07-03 17:39 수정 2019-07-03 18:11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기자들에게 비보도를 전제로 “미 정부가 (북한과의 실무 협상에서) 원하는 것은 북한 대량살상무기의 ‘완전한 동결’”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비건 대표는 대북 제재가 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양국이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할 수 있다는 의사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2일(현지시간) 비건 대표가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회담이 마무리 된 후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전용기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지난 2월 하노이 회담 때 미국이 주장한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 일괄 폐기(빅딜)’ 기조에서 한발짝 물러나 북측이 요구하는 ‘단계적 접근법’을 일부 수용한 것으로 읽힌다. 악시오스는 비건 대표가 북한과의 실무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 내부 대북 강경파들보다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사를 시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비건 대표는 북한의 비핵화 전에 대북 제재 완화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정부는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동결하기 전까지 대북 제재를 해제할 생각이 없다”면서도 “(북측에) 인도주의적 지원이나 외교 관계 개선 등으로 양보할 용의는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상대국 수도에 (연락사무소 등) 외교 창구 설치, 양국 대화 확대 등의 방안이 거론됐다.

비건 대표의 이날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핵 동결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비핵화 협상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NYT)의 최근 보도 내용과 맞물린다. NYT는 앞서 트럼프 행정부가 비핵화 협상의 목표를 핵 폐기에서 핵 동결로 낮췄고, 이는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북 강경파인 ‘슈퍼 매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해당 보도에 대해 “대통령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려는 누군가의 획책”이라며 “어떠한 NSC 참모들도 북핵 동결이라는 아이디어를 듣거나 논의한 바가 없다”고 반박했다.

비건 대표도 NYT 보도를 의식한 듯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해당 보도가 나온 이튿날에도 “완전한 추측”이라며 “현재로서는 북한에 어떠한 새로운 제안도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의 발언들을 종합해 봤을 때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과정의 첫 단계로서 북핵 동결을 제안했을 뿐 동결 그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